성서일과 묵상

2026년 7월 5일 성령강림 후 여섯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본문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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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읽기 전 잠시(1-2분) 침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은 바로 네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 구약스가랴 9:9-12 (새번역)

  • 9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 10"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 11너에게는 특별히, 너와 나 사이에 피로 맺은 언약이 있으니, 사로잡힌 네 백성을 내가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 낼 것이다.
  • 12사로잡혔어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아, 이제 요새로 돌아오너라. 오늘도 또 말한다. 내가 네게 두 배로 갚아 주겠다.
스가랴 9:9-12을 묵상하십시오. 

(관찰) 오시는 왕은 어떤 성품과 모습으로 묘사됩니까? 또 그분이 "없애시겠다"는 것(병거·군마·활)과 "베푸시겠다"는 것(평화·건져냄·두 배의 갚음)은 각각 무엇입니까?

(관찰) "사로잡힌 백성", "물 없는 구덩이", "요새", "두 배로 갚음" — 포로 된 자의 처지와 회복이 어떤 단어들로 그려지고 있습니까?

(묵상) "사로잡혔어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아"라는 부르심 앞에서, 나는 지금 무엇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어떤 희망을 붙들고 있습니까?

말씀 - 시편시편 145:8-14 (공동번역)

  • 8야훼는 자애롭고 자비로우시며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지극하시다.
  • 9야훼는 모든 것을 인자하게 보살피시고 그 부드러운 사랑은 모든 피조물에 미친다.
  • 10야훼여, 당신의 온갖 피조물들이 감사 노래 부르고 신도들이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 11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들어 말하고 당신의 공적을 이야기하게 하소서.
  • 12그리하여 당신의 공적을 사람에게 알리고 당신 나라의 그 찬란한 영광을 알리게 하소서.
  • 13당신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당신만이 만세에 왕이십니다. 야훼의 말씀은 언제나 진실되고, 그 하시는 일 모두 사랑의 업적이다.
  • 14누구나 쓰러지면 붙들어주시고 거꾸러지면 일으켜주신다.
시편 145:8-14을 묵상하십시오.

(관찰)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어떤 단어들로 묘사합니까(자애·자비·화를 참으심·지극한 사랑)?

(관찰)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미치는 대상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확장됩니까(모든 피조물 → 쓰러진 자 → 거꾸러진 자)?

(묵상) "쓰러지면 붙들어주시고 거꾸러지면 일으켜주신다"는 약속을, 내가 가장 무너졌던 자리에서 어떻게 경험했습니까(혹은 지금 어떻게 붙들리고 싶습니까)?


말씀 - 서신서로마서 7:15-25 (새번역)

  • 15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16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 17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 18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 19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 20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 21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 22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 23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 24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로마서 7:15-25을 묵상하십시오.

(관찰) 바울은 자기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어떤 대조로 표현합니까(원하는 선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은 행함)? "속사람"과 "지체"는 각각 무엇을 섬긴다고 합니까?

(관찰)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라는 절규 끝에 바울이 도달한 답은 누구입니까?

(묵상)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그 분열을,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서 가장 깊이 겪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비참함을 "감사"로 돌려놓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 - 복음서마태복음 11:16-19, 25-30 (새번역)

  • 16"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 17'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 19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 25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 26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 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려고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 28"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 30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 11:16-19, 25-30을 묵상하십시오.

(관찰)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엇에 빗대시며, 요한과 인자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관찰) 아버지께서 진리를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에게는 감추시고 누구에게 드러내셨다고 합니까? 또 예수님은 자신을 어떤 분("마음이 ___하고 ___한")으로 소개하며 누구를 부르십니까?

(묵상)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는 초청 앞에서, 지금 내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분의 가벼운 멍에로 바꾼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묵상 가이드

이번주 네개의 본문은 "오시는 온유한 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온유하신 왕이 쉼을 주시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스가랴서에서는 오시는 왕이 "온순하셔서" 군마가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고 오라고 부르십니다.

온순하고 겸손하신 왕은 누구를 부르실까요?

시편에서는 "누구나 쓰러지면 붙들어주시고 거꾸러지면 일으켜주신다"며 하나님의 자비가 쓰러지고 거꾸러진 자들에게 임한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는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이에게 예수님을 통해 구원이 임합니다.

'인간의 한계와 절망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안식으로 이어질까요?'

로마서에서 바울은 선을 행하고 싶지만 도리어 악을 행하고 마는 인간 내면의 깊은 균열과 영적인 무력함을 철저히 고백합니다. 우리 안에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습니다. 자기 의를 세우려 하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닿으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우리를 "비참한 사람"이라는 깊은 탄식과 피곤함으로 이끌 뿐입니다.

하지만 스가랴서와 마태복음은 세상의 방식(병거와 군마, 무력과 강요)이 아닌, 나귀를 탄 '온유하고 겸손한 왕'이 우리에게 오심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냉소적이고 무감각한 세대를 향해, 종교적인 짐과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을 향해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를 옭아매는 율법이나 자기 증명의 짐이 아니라, 주님과 발을 맞추어 걷는 억지로 하지 않는 '은혜의 리듬'입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시편)을 신뢰하며, 내 안의 절망(로마서)을 인정하고, 은혜로 이끄시는 온유한 왕의 초청(마태복음)에 응답하는 여정으로 이번주 묵상을 이어가 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