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일과 묵상

2026년 7월 19일 성령강림 후 여덟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본문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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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읽기 전 잠시(1-2분) 침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은 바로 네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 구약이사야 44:6-8 (새번역)

  • 6이스라엘의 왕이신 주, 이스라엘의 속량자이신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시작이요, 마감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
  • 7누가 나처럼 선언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고할 수 있느냐? 나를 누구와 견줄 수 있느냐? 만일 있다면, 내가 옛날 사람들에게 미래를 예고했듯이, 그들에게 다가올 일들을 미리 말하여 보라고 하여라.
  • 8너희는 떨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내가 예전부터 너희에게 이미 예고하여 주지 않았느냐? 나는 예고하였고, 너희는 이것을 증언할 나의 증인들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또 있느냐? 다른 반석은 없다. 내가 전혀 아는 바 없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
바벨론 제국의 신들이 위세를 떨치던 포로기에, 하나님은 "나는 시작이요 마감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미래를 미리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며, 이스라엘은 그 사실의 '증인'으로 부름받습니다. "떨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는 위로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역사의 끝을 쥐고 계신 '반석' 위에 서 있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세상 끝 날의 추수를 말하는 오늘 복음서의 든든한 토대가 되는 말씀입니다.
관찰
  • 16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여러 호칭으로 소개하십니다(왕, 속량자, 만군의 주, 시작이요 마감). 이 호칭들을 찾아 적어보십시오. 각 호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까?


관찰
  • 28절에서 하나님은 백성에게 두 가지를 명하십니다 — 하지 말아야 할 것("떨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과 되어야 할 것("나의 증인들").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떨지 말라"고 하십니까? (힌트: "내가 예전부터 이미…")


묵상. 포로기의 이스라엘처럼, 지금 내 눈에 '다른 신들' — 돈, 힘, 여론, 불안 — 이 더 강해 보이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다른 반석은 없다"는 선언을 그 영역 위에 놓는다면, 나의 두려움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말씀 - 시편시편 86:11-17 (공동번역)

  • 11야훼여, 당신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충실하게 그 길을 걷고 마음 한데 모두어 당신 이름을 경외하리이다.
  • 12주, 나의 하느님, 내 마음 다하여 감사 기도 드리며 당신의 이름을 영원히 높이리이다.
  • 13지옥 깊은 곳에서 이 목숨을 건지셨으니 크고 크신 주의 사랑 감당할 길 없사옵니다.
  • 14하느님, 교만한 자들이 나를 거슬러 일어나고 흉악한 자 떼지어 내 목숨 노리오니 그들은 당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
  • 15그러나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시어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시니 참되신 주의 사랑 그지없으십니다.
  • 16이 몸을 굽어보시고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당신의 여종에게서 태어난 이 몸, 나에게 당신 구원 내려주시고
  • 17어지심의 징표를 보여주소서. 야훼여, 당신께서 이 몸을 도우시고 위로하셨음을 원수들이 보고 부끄러워하게 하소서.
위협 속에서 마음을 모으는 기도
교만한 자들이 떼지어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서, 시인의 첫 간구는 놀랍게도 원수의 제거가 아니라 "당신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입니다. "마음 한데 모두어"(11절)라는 표현은 두려움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마음을 하나님 한 분께로 통합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시인이 기대는 근거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시어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15절)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더디 노하심'이야말로, 가라지를 당장 뽑지 않고 추수 때까지 기다리시는 밭 주인의 마음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관찰질문
  • 114절에서 시인이 처한 상황을 찾아보십시오. 그런데 11절에서 시인이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위급한 상황과 첫 간구 사이의 '간격'이 왜 놀라운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관찰질문
  • 215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네 가지로 고백합니다(자비로우심, 너그러우심, 좀처럼 화내지 않으심, 그지없는 사랑). 시인은 원수의 위협 앞에서 왜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고 있을까요? 본문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십시오(13절).


묵상질문. "마음 한데 모두어"(11절)라는 기도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산산이 흩어진 마음을 하나님께로 모아 달라는 간구입니다. 요즘 나의 마음을 여러 갈래로 흩어놓는 것은 무엇입니까? 흩어진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면, 내 하루의 모습은 무엇이 달라질까요?

말씀 - 서신서로마서 8:12-25 (새번역)

  • 12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 13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14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15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 16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 17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 18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19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20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 21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 22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23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 24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 25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신음하며 기다리는 소망
바울은 성령을 받은 사람은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자녀라고 말합니다. 자녀 됨은 곧 상속자 됨이고, 상속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겪는 고난이 포함됩니다. 지금 온 피조물이 신음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신음이 아니라 해산의 진통이며,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날을 향한 진통입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 믿음의 기다림은 눈에 보이는 증거가 아니라, 약속하신 분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참는 것입니다.
관찰질문
  • 115절은 두 가지 '영'을 대조합니다 —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과 "자녀로 삼으시는 영".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종'과 '자녀'는 같은 집에 살아도 무엇이 다를까요?


관찰질문
  • 222-23절에서 '신음'하는 존재는 누구누구입니까? 바울은 이 신음을 무엇에 비유합니까(22절)? 죽어가는 신음과 '해산의 고통'은 같은 아픔이라도 무엇이 결정적으로 다릅니까?


묵상질문.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24절).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기다림은 지금 체념에 가깝습니까, 해산의 진통에 가깝습니까? 그 기다림이 소망이 되기 위해, 내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일까요?

말씀 - 복음서마태복음 13:24-30, 36-43 (새번역)

  • 24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 25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 26밀이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 27그래서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 28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였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하였다.
  • 29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 30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 36그 뒤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밭의 가라지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십시오."
  • 37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 38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그 나라의 자녀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다.
  •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 끝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 40가라지를 모아다가 불에 태워 버리는 것과 같이, 세상 끝 날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 41인자가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죄짓게 하는 모든 일들과 불법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나라에서 모조리 끌어 모아다가,
  • 42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43그 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 10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가라지(독보리)는 자랄 때 밀과 거의 구별되지 않아, 섣불리 뽑으면 밀의 뿌리까지 상하게 합니다. 주인의 "내버려 두어라"는 악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밀 한 포기도 잃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사랑이며, 판단의 때와 권한이 오직 주인에게 있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종종 종들처럼 지금 당장 갈라내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은 최종 판단을 세상 끝 날의 추수꾼에게 맡기라 하십니다. 우리의 몫은 남을 가려내는 일이 아니라, 좋은 씨로서 인내 가운데 자라며 열매 맺는 일입니다.
관찰질문
  • 128-30절에서 종들이 하고 싶어 한 일과, 주인이 명한 일을 비교해 보십시오. 주인이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29절)? 이 이유에서 주인이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 그것은 무엇입니까?


관찰질문
  • 236-43절의 해설에서 예수님은 비유의 각 요소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려주십니다. 씨 뿌리는 이, 밭, 좋은 씨, 가라지, 원수, 추수 때, 추수꾼이 각각 무엇인지 짝지어 보십시오. 이 목록에서 '종들(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이 빠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 그렇다면 가려내고 심판하는 일은 누구의 몫입니까?


묵상질문. 나는 지금 누군가를, 혹은 어떤 상황을 '가라지'로 판정하고 뽑아버리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밀과 가라지가 자랄 때 구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판단을 추수의 주인께 맡긴다면, 이번 한 주 나는 그 사람(상황) 앞에서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성경묵상 가이드

2026년 7월 19일 성령강림 후 여덟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우리는 불의한 세상을 삽니다. 어찌보면 중간기(이미와 아직의 하나님나라)를 살기에 악이 존재하고, 고통과 어려움이 존재하는 세상에 삽니다. 이런 악과 고통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번주 성서일과의 말씀은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지? 우리는 어떤 자세와 반응을 보여야하는지를 말씀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의 백성은 제국의 신들 앞에 서 있고,

시편의 시인은 목숨을 노리는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바울의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살이 아래 신음하고,

예수님의 밭에는 밤사이 가라지가 뿌려졌습니다.

성경은 악의 존재를 얼버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 취하는 자세가 세상과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뽑고, 갚고, 갈라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밭의 주인은 "추수 때까지 두어라"고 말합니다. 무관심해서가 아닙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의 뿌리까지 상할까 염려하는, 밀 한 포기를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시편의 시인도 같은 길을 보여줍니다. 원수 갚음을 구하는 대신 "당신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마음을 한데 모두어 당신 이름을 경외하리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위협 앞에서 흩어지기 쉬운 마음을 하나님께로 모으는 것 — 그것이 믿는 사람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이 기다림이 헛된 버팀이 아니라 해산의 진통이라고 말합니다. 신음 속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 있고,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함께 증언하십니다.

"떨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처음과 마지막을 쥐고 계신 반석 위에 서 있다면, 우리는 판단을 주인께 맡기고 좋은 씨로 자라는 일에 마음을 둘 수 있습니다. 그 기다림의 끝에서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흐린 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 맑은 물이 드러나듯,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