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일과 묵상
2026. 9. 13.
성령강림 후 열여섯번째주일 창조절 둘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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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말씀을 읽기 전 잠시(1-2분) 침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은 바로 네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구약
창세기 50:15-21 (새번역)
15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그들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16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17 아우님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 이 아버지는 네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기를 바란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우님은, 우리 아버지께서 섬기신 그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서 울었다.
18 곧 이어서 요셉의 형들이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20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21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
창세기 50:15-21을 묵상하십시오.
본문 배경
요셉 이야기(창 37–50)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야곱의 장례를 마치고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돌아온 직후(50:1–14), 아버지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진 순간 형들의 오래된 두려움이 되살아납니다. 화해는 44–45장에서 이미 이루어졌지만, 형들의 마음속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관찰 질문
형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입니까? 무엇이 사라지자 두려움이 올라왔습니까?
20절에서 "형님들"이 한 일과 "하나님"이 하신 일은 각각 무엇입니까?
두 주어의 행동은 어떻게 다릅니까?
요셉이 마지막으로 약속한 것은 무엇입니까? 감정입니까?, 구체적인 행동입니까(21절)?
묵상질문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지금 내가 누군가에 대해 앉아 있는 심판석이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시편
시편 103:1-13 (공동번역)
1 내 영혼아, 야훼를 찬미하여라. 속으로부터 그 거룩한 이름을 찬미하여라.
2 내 영혼아, 야훼를 찬미하여라. 베푸신 모든 은덕 잊지 마라.
3 네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네 모든 병을 고쳐주신다.
4 네 목숨을 구렁에서 건져주시고 사랑과 자비의 관을 씌워주신다.
5 네 인생에 복을 가득 채워주시어 독수리 같은 젊음을 되찾아주신다.
6 야훼께서는 정의를 펴시고 모든 억눌린 자들의 권리를 찾아주신다.
7 모세에게 당신의 뜻을 밝혀주시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장한 일을 알리셨다.
8 야훼께서는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며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넘치신다.
9 끝까지 따지지 아니하시고 앙심을 오래 품지 않으신다.
10 우리 죄를 그대로 묻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
11 높기가 땅과 하늘에 비길 수 있고, 경외하는 자에게는 그 사랑 그지없으시다.
12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우리의 죄를 멀리 치우시고
13 아비가 자식을 어여삐 여기듯이 야훼께서는 당신 경외하는 자를 어여삐 여기시니
시편 103:1-13을 묵상하십시오.
본문 배경
개인의 감사가 공동체의 찬양으로 넓어지는 시입니다. 1–5절은 "내 영혼아"라며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고, 6절부터는 이스라엘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3–5절은 하나님의 은덕을 다섯 가지로 늘어놓습니다. 용서하시고, 고쳐주시고, 건져주시고, 관 씌워주시고, 채워주십니다.
8절은 출애굽기 34:6–7의 인용입니다. 금송아지 사건 직후 하나님이 스스로를 소개하신 바로 그 문장입니다.
관찰 질문
3–5절에 나열된 은덕을 하나씩 세어 보십시오. 그중 첫 번째는 무엇입니까?
6절은 하나님의 자비를 누구와 연결합니까? 개인의 용서와 사회적 정의가 어떻게 한 호흡 안에 놓여 있습니까?
묵상질문
하나님은 "끝까지 따지지 아니하시고 앙심을 오래 품지 않으신다"(9절)고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끝까지 따지고 있습니까?
내가 받은 용서의 크기를 정직하게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까? 그 크기를 모를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됩니까?
서신서
로마서 14:1-12 (새번역)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5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0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6)"주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12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4:1-12을 묵상하십시오.
본문 배경
로마 교회의 아주 구체적인 갈등입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추방 칙령(주후 49년경)으로 로마를 떠났던 유대인 신자들이 칙령의 효력이 사라진 뒤 돌아왔을 때, 교회는 이미 이방인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었습니다. 먹는 것과 지키는 날을 둘러싼 충돌과 갈등이 존재했었습니다.
바울은 양쪽에 각기 다른 죄를 지적합니다. 강한 쪽에는 업신여김, 약한 쪽에는 비판. 무시와 정죄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열매입니다.
관찰 질문
갈등의 구체적 항목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2절, 5절)?
3절에서 바울은 양쪽에 각각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합니까? 두 명령이 왜 서로 다른 말로 표현되었을까요?
6–8절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몇 번 나옵니까?
묵상질문
나는 주로 업신여기는 쪽입니까, 비판하는 쪽입니까? 최근 그 마음이 올라왔던 장면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라는 문장이 오늘 나의 하루를 어떻게 바꿉니까?
복음서
마태복음 18:21-35 (새번역)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24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18)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19)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18:21-35을 묵상하십시오.
본문 배경
마태복음 18장은 공동체 담화입니다. 작은 자 하나를 실족시키지 말라(6절), 잃은 양 하나를 찾아가라(12절), 죄지은 형제를 찾아가 권면하라(15–20절). 베드로의 질문은 그 권면의 절차를 막 들은 직후에 나옵니다. "그렇게 찾아가는 일을 대체 몇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일흔 번을 일곱 번"은 창세기 4:24 라멕의 노래를 뒤집습니다. 라멕은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배면 라멕을 해친 벌은 일흔일곱 배"라며 복수의 무한을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숫자로 용서의 무한을 말씀하십니다.
만 달란트 : 한 달란트는 육천 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만 달란트는 육천만 일의 품삯, 곧 이십만 년치입니다. 헤롯 대왕 왕국 전체의 한 해 수입이 구백 달란트 남짓이었다는 기록을 생각하면, 이 액수는 셈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의 과장입니다. 백 데나리온과의 비율은 육십만 대 일입니다.
관찰 질문
베드로의 질문에서 죄를 짓는 쪽과 용서하는 쪽은 각각 누구입니까? 그는 어느 자리에 서서 묻고 있습니까?
두 빚의 크기를 비교해 보십시오. 그 차이가 이 비유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묵상질문
나는 지금 누구의 멱살을 잡고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름을 붙여 보십시오.
용서가 아직 되지 않는 자리가 있다면, 억지로 넘기는 대신 그 사실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어 보십시오. "마음으로부터"의 용서는 명령인 동시에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성경묵상 가이드
용서와 관련하여
불교는 미운 마음을 붙잡는 꽉 쥔 손을 펴라고 하고,
유교는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하되 그 사람 마음도 헤아려 보라고 하고,
기독교는 내가 먼저 큰 용서를 받았으니 나도 흘려보내라고 하고,
심리학은 "안 갚아줄게"는 오늘 정하고 그 사람에 대한 미운 마음은 천천히 없어져도 괜찮다고 합니다.
주먹을 꽉 쥐고 있으면 상대방에게 언제든 펀치를 날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꽉 쥐고 있는 두 손은 아무것도 잡을 수 없고, 받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붙들고 받으려면 꽉 쥔 두 손을 펼쳐야 합니다.
기독교의 용서의 메시지는 꽉 쥔 두 손을 펼치도록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와 메시지가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자리의 문제입니다. 계산서를 손에서 내려놓고 심판석에서 걸어 내려오는 일. 그리고 그 일은 내가 먼저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서만 시작됩니다.
오늘 네 본문은 모두 누가 심판석에 앉는가를 묻습니다.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창 50:19)라고 묻고,
바울은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롬 14:10)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은 종들과 셈을 가리려는 왕의 비유(마 18:23)를 들려주십니다.
시편 103편은 그 자리에 앉으신 분이 어떤 분인지를 노래합니다 — "우리 죄를 그대로 묻지 않으시는"(10절) 분.
· 반복되는 말 : 용서 ·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불쌍히(가엾게) 여기다 · 갚다·셈하다 · 종.
· 맞서는 두 셈법 : 형들은 "앙갚음"을 두려워하고(창 50:15), 종은 "갚아라"라고 멱살을 잡습니다(마 18:28).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갚지 않으시는"(시 103:10) 분입니다. 갚음의 회계장부와 탕감, 두 셈법이 본문 전체에서 부딪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