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일과 묵상
2029. 9. 27.
성령강림 후 열여덟번째주일 창조절 넷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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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말씀을 읽기 전 잠시(1-2분) 침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은 바로 네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구약
에스겔 18:1-4, 25-32
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직도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 하는 속담을 입에 담고 있느냐?
3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속담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4 모든 영혼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 똑같이 나의 것이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잘 들어라.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26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짓다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대로 살며, 의를 행하면, 자기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28 그가 스스로 깨닫고, 자신이 지은 모든 죄에서 떠나 돌이켰으니, 그는 반드시 살 것이요, 죽지 않을 것이다.
29 그런데도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일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30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 각 사람이 한 일에 따라서 너희를 심판하겠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그렇게 하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너희를 넘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31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32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본문 배경
에스겔은 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간 제사장 출신 예언자입니다. 18장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586년) 전에 유배지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시절, 이스라엘 백성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서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속담을 써가며 자신들의 고통을 조상들의 죄 탓으로 돌렸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며, 연좌제적 운명론을 깨뜨립니다. 하나님은 연합된 죄책보다 각 개인의 인격적 책임과 의지를 중요하게 보시며, 악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하면 생명을 얻기를 기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관찰 질문
이스라엘 사람들이 입에 담던 속담은 무엇이며, 하나님은 그 속담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십니까? (2-3절)
하나님께서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보다 정작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묵상질문
최근 내 삶에서 발생한 문제나 신앙의 정체를 타인이나 환경, 혹은 과거의 탓으로 돌리고 있던 부분은 무엇이며,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직접 책임지고 돌이켜야 할 영역은 어디인가요?
시편
시편 25:1-9
1 야훼여, 내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뵈옵니다.
2 나의 하느님, 당신만을 믿사오니, 부끄러운 꼴 당하지 않게 하시고 원수들이 으스대는 꼴 보지 않게 하소서.
3 당신만을 믿고 바라면 망신을 당하지 않으나, 당신을 함부로 배신하는 자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야훼여, 당신의 길을 가리켜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소서.
5 당신만이 나를 구해 주실 하느님이시오니 당신의 진리 따라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소서. 날마다 당신의 도움만을 기다립니다.
6 야훼여, 당신의 자비와 한결같으신 옛 사랑을 기억하시고
7 젊어서 저지른 나의 잘못과 죄를 잊어주소서. 야훼여, 어지신 분이여, 자비하신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소서.
8 야훼여, 당신은 바르고 어지시기에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치시고
9 겸손한 자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본문 배경
다윗의 탄원시로 알려진 이 시는 고난과 원수들의 압제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개인 탄원시이자 지혜시입니다. 시인은 단순한 위기 탈출만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젊어서 지은 죄를 솔직히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합니다. 주님의 길과 진리로 자신을 가르쳐 달라고 구하는 겸손한 죄인의 기도가 깊게 흐르고 있습니다. 기도의 핵심 동사는 "가르쳐 주소서"입니다. 8절의 "가르치다"(요레, יוֹרֶה, 가르치다·지시하다)는 "토라"와 같은 어근입니다. 6-7절에는 섬세한 대조가 있습니다. "당신의 자비(라하밈, רַחֲמִים, 모태에서 나온 긍휼)와 한결같은 사랑(헤세드, חֶסֶד, 언약적 신실함)은 기억하시고(제코르, זְכֹר)", "내 젊은 날의 죄는 기억하지 마소서(알 티즈코르, אַל־תִּזְכֹּר)"라고 구합니다. 하나님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구하는 대담한 기도입니다. 그 근거는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선하심"(7절)입니다.
관찰 질문
1-9절에서 "길"과 "가르치다"라는 말은 몇 번 나옵니까?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시인은 하나님께 무엇을 "기억해" 달라고 하고, 무엇을 "잊어" 달라고 합니까? (6-7절)
묵상질문
하나님이 잊어 주시기를 바라는 나의 과거가 있습니까? 그 과거가 오늘 나의 걸음을 붙잡고 있다면, 시편 기자처럼 "주님의 선하심으로 나를 생각해 주소서"라고 기도해 봅시다.
서신서
빌립보서 2:1-13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본문 배경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로, 교회 내의 다툼과 허영을 경계하고 공동체의 하나 됨을 당부하는 문맥입니다. 바울은 그 해결책으로 유명한 '그리스도의 비움(Kenosis) 찬가'를 제시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스스로를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를 본받아, 성도들도 겸손하게 서로를 돌보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권면합니다. 핵심 동사는 "생각하다·마음을 품다"(프로네오, φρονέω, 생각하다·마음을 품다)로, 2절과 5절에 반복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습(모르페, μορφή, 모습·형태)을 지니셨으나 동등함을 움켜쥘 것(하르파그모스, ἁρπαγμός, 움켜쥘 것·붙잡을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고(에케노센, ἐκένωσεν, 비우셨다) 종(둘로스, δοῦλος,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3절이 경계하는 "허영"(케노독시아, κενοδοξία, 헛된 영광)과 7절의 "비우심"은 같은 "텅 빈(케노스, κενός)" 어근을 공유합니다. 인간은 헛된 영광으로 채우려 하고, 그리스도는 비움으로 영광에 이르십니다.
관찰 질문
3-4절에서 바울은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고,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6-8절에서 그리스도의 움직임을 동사만 따라 순서대로 적어 보십시오. 그 방향은 위로 향합니까, 아래로 향합니까?
묵상질문
나 자신의 유익이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겸손한 '비움'과 '낮아짐'을 실천해야 할 내 삶의 자리(가정, 일터, 교회)는 어디인가요?
복음서
마태복음 21:23-32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말하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째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26 또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무리가 무섭소. 그들은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런데 맏아들은 대답하기를 '싫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그는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예,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서는, 가지 않았다.
31 그런데 이 둘 가운데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예수께서 이렇게 물으시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맏아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옳은 길을 보여 주었으나,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았으며, 그를 믿지 않았다."
본문 배경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직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시비 거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한 질문으로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신 후,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말로만 순종하고 행하지 않은 종교 지도자들보다, 비록 처음엔 범죄했으나 뉘우치고 돌이킨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선언을 통해 참된 회개의 중요성을 가르치십니다.
관찰 질문
종교 지도자들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찾아와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두 아들 중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을 때, 뉘우치고 실제 포도원으로 가서 일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묵상질문
나는 요즘 하나님께 "예" 하고 가지 않은 일이 있습니까, 아니면 "싫습니다" 했지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지금 포도원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성경묵상 가이드
"환경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원래 그렇게 자라서"…. 우리는 이런 말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언어에도 익숙합니다. "아멘"과 "예, 주님"은 입에 쉽게 오릅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삶의 자리, 곧 우리의 포도원으로는 좀처럼 발걸음을 옮기지 않습니다. 탓하는 말과 고백하는 말 사이에서 우리의 걸음은 자주 멈춰 서 있습니다.
오늘 성서는 우리를 향해 경고하면서 동시에 초대합니다. 조상의 핑계나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으라고 말합니다.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변화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마음, 그리고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회개는 지난날을 곱씹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아닙니다. 탓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갈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에스겔은 이를 "돌이키라"고 했고, 마태복음은 "뉘우치고 갔다"고 전합니다. 이 돌이킴은 나 혼자의 결심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싫습니다" 하던 마음까지 움직이셔서 원하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빌 2:13).
오늘 우리는 과거에 묶인 채 그 자리에 머물겠습니까? 아니면 시작이 늦었더라도,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되풀이했더라도, 지금 마음을 돌이켜 나의 포도원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겠습니까?
신 포도의 기억이 아직 이를 시리게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 죽고자 하느냐… 회개하고 살아라"(겔 18:31-32).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돌이킴을 기다리십니다.
에스겔은 "조상 탓"이라는 운명론을 깨뜨립니다. 과거가 너를 결정하지 않는다, 지금 돌이키면 산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시편 25편은 그 돌이킴을 기도로 받아냅니다.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 "젊어서 저지른 죄를 잊어 주소서"라고 구합니다.
마태복음은 돌이킴을 말과 행동의 차이로 보여 줍니다. "싫습니다" 했다가 뉘우치고 간 아들과, "예, 주님" 하고도 가지 않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권위를 따지던 종교 지도자들은 끝내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는 그 변화의 근원을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비우고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을 함께 일으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