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사는 신비

본문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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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삼위일체주일.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작년 년말부터 교회력을 따라서 예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1월말 대림절을 시작으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삼위일체 주일의 흐름으로 1년의 반을 지납니다. 그리고 나머지 6개월은 특별한 절기없이 성령강림절 후 몇째주 26주까지 주욱 이어집니다. 놀랍죠? 저도 진행하면서 차차 알아가고 교회력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려고 합니다.

교회력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삼위일체주일로 마치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예배를 시작하며 이야기했듯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보내시는 주체인 삼위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첫번째의미가 있을 것이고
성령강림 후 세상으로 보냄받아 하나님의 선교를 담당했던 제자들의 삶을 보며
이후의 우리의 삶도 성령강림절 이후 보냄받는 곳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은 그리스도 우리 왕 주일로 왕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대함으로 교회력의 한해를 마무리 합니다.

오늘 삼위일체주일을 맞아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 말씀도 지난번 성령강림절 처럼 강의형식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갖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담고 있는 의미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이끄는지를 살핌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발견되어지고 형성되어지는 삶으로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삼위일체는…

삼위일체는 복잡하고 어려운 논리적 개념이 아니라 한분이면서 세분이신, 세분이면서 한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나타난 고백입니다. 삼위일체는 논리로 파악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드러내시는 것을 경험으로 고백한 언어입니다. 논리적으로 다 풀수 없는 삼위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을 경험으로 고백한 신비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머리 아픈,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고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살아있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살아 있는 신앙의 고백인 삼위일체신학(고백)은 우리의 정체성과 영성의 기초를 제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우리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이해하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매일의 삶에 실제적이고 지대한 변화와 영향을 가져옵니다.

삼위일체 자체를 다루는 것은 시간상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IVP에서 나왔구요. 데럴 존슨이라는 분이 지은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책입니다. 약 100여쪽에 분량으로 무겁지 않지만 내용은 충실한 책입니다. 삼위일체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맑은물 필독서로 선정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오늘 삼위일체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는 삼위일체 신학이 우리 삶에 가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의 존재는 삶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26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의 근원과 존재의 방식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1장 1절을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초에 관계가 계셨다.” 
영원 전부터 친밀한 관계와 사랑의 공동체로 존재해 오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우리도 관계를 위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좋다. 좋아하고 반응하셨고,
사람을 지으신 후에는 좋아. 너무 좋아. 참 좋아하고 반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서로의 존재로 인해 기쁨을 누리는 관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에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 하시고 아담을 통해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혼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닮을 수 없기에 두 사람이 사랑 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가 외로움을 힘겨워하고, 관계가 깨어질 때 몸과 맘을 병들게 하고, 죽음이라는 단절을 느낄 때 고통스러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소홀히하고 담을 쌓고 경계를 짓고 혐오와 배제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관계적 본질을 반영하도록 창조된 우리의 본질적 속성을 위배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가정교회에서, 그리고 맑은물 전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용서하는 관계를 통해 삼위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고 반영하는 공동체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삼위하나님은 서로에게 깊이 소속됩니다. 
삼위하나님은 서로를 온전히 섬기고 사랑합니다. 
삼위하나님은 서로를 통제하거나 조작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경험하고 닮아감을 통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용서하며, 환대하고 내어주며, 서로를 기뻐하는 관계로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우리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만족과 즐거움과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참된 만족과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자존감, 정서적 안정, 욕구의 근원적 충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이것을 다른 사람, 물질, 인정, 성공을 통해 찾으려 할 때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고 관계를 깨뜨리고 자신을 괴롭히게 만듭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다른 우물을 파고 더 목말라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찾을 때 비로소 안식을 누리고 참된 평안을 누립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질 때 세상의 인정과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읍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신비한 연합과 사랑의 공동체 안으로 파고 들어갑시다. 
아이들이 어릴적에 자주 부모의 품을 파고 들어오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도 하나님의 품 속으로 찾아들어가야겠다는 묵상을 하곤 했습니다.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그 관계 안으로 초대하시고 우리를 끌어당기고 계십니다. 그 초대에 반응하는 우리이길 바랍니다. 그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화와 만족을 누리는 맑은물 가족이길 바랍니다. 

2. 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적이다.

삼위일체 신학의 두번째 의미는 우리의 구원이 삼위일체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례시에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그리고 본래 세례는 온 몸이 물에 온전히 잠기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전 존재가 그 이름에 온전히 잠기는 것,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인 생명에 참여하는 것, 하나님의 삼중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의 관계에서 단절된 존재가 다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하고 충만한 사랑의 관계 안으로 다시 잠겨 사랑의 존재가 됩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의 구원이 삼위일체하나님의 사역으로 묘사합니다. 
베드로전서 1:2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미리 아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 주셔서, 여러분은 순종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성부하나님이 택하시고 계획하시고
성자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구속하시고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인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확증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동적이고 놀라운 드라마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쓰면서 1장을 찬송시로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일을 묵상하면서 찬송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쓰시는 구원의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사함 받고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삼위하나님의 위대한 드라마를 듣고 새로운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새창조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셨고, 이루어 가고 계시고, 이루어 가실 그 일에 우리는 초대되어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완벽한 구원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푸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돌아보고 묵상합시다. 
하나님이 하셨고, 하고 계시고, 하실 일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깁시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존재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삶과 사역은 삼위일체적입니다.

구원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사귐이 영원히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를 마치며 세상으로 보냄받는 자리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일상으로 보냄받습니다. 삼위일체하나님을 서로에게, 이웃에게, 세상 가운데 반영하고 나타내기 위해 보냄을 받습니다. 예배를 마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마치며 보냄을 받는 것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통치를 드러내는 무대입니다. 일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고 실현합니다. 만남과 사귐과 섬김과 대화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반영하고 나타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 가운데 새창조의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너무 크고 신비로운 것이어서 이해할 수 없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세상 한 가운데에서 새창조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원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는 자”로 보내십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과 사역은 세상 가운데 일하시고 우리를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는 그 일과 삶과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힘들고, 지치고, 막막하고, 두려운 자리에서도 기뻐하며 소망을 갖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삼위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하나님께서 아직도 세상 가운데 일하시고 우리가 그 일에 부름받고 우리가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는 자로 보내셨습니다. 
고단한 삶이지만 우리가 이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자리로 초대받고 보내어졌음을 기억하며 우리의 일상을 삼위하나님과 충실하게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길 바랍니다. 

나가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존재와 구원, 삶과 사역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삼위일체는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복잡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도록 초대받은, 살아 있는 관계이자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관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성부께서 우리를 위하시고, 성자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이 놀라운 진리를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하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우리의 깨어진 관계를 치유하고, 우리의 영성에 균형을 가져오며, 세상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는 자'로서 온전히 살아가도록 이끌 것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 갖겠습니다. 
매달 첫째주는 성찬이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주는 찬양시간이나 설교 후에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난달에는 찬양시간 중에 태형형제가 알게모르게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몰랐죠?

성령이여 우리를 예수께로… 예수여 우리를 아버지께로… 아버지 우리를 예수께로… 예수여 우리를 성령께로… 인도하소서 그 친밀한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그 영원한 사랑으로

같이 기도합시다. 
이시간에는 침묵으로 5분 가량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떠올려 봅시다. 
한분이면서 세분이신, 세분이면서 한분이신 하나님을 생각해봅시다.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온전히 하나인 신비의 연합을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귐에 잠겨있는 나를 우리를 묵상해봅시다.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나를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나의 연약함. 나의 고민, 나의 기도, 나의 분노,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맡깁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시고, 만지시고, 빚으시고 형성해 가도록 나를 내어드립시다. 한문장 기도로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 나를 다스려주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그 신비한 연합 안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며 우리를 그 사랑의 원 안으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십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주시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가 어떠한지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지기를 구합시다. 
우리가 속한 가정교회가 가정교회에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맑은물이 삼위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 거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자녀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뿌리 내리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의 필요를 두고 기도합시다. 
직장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반영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직장을 구하고 이직을 하고 이사를 계획하고 차를 구하고 사랑하는 이를 구하는 기도에 하나님 응답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기억나는 사람 생각 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회복해야할 관계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모험에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를 기도합시다.

내란을 종식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에 있습니다. 
맡은 이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사람이 사람답게, 노동이 존중받고, 아이들이 자라서 살만한 세상. 자유와 평화와 환대의 세상이 오도록 기도합시다. 
이스라엘과 이란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전쟁 가운데 하나님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오게 해주십시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들을 심판해주시고 평화가 깃들게 해주십시오.

성령이여 우리를 예수께로… 예수여 우리를 아버지께로… 아버지 우리를 예수께로… 예수여 우리를 성령께로… 인도하소서 그 친밀한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그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부르시며, 세상 가운데 우리를 보내시는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 축복하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