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본문

Celebration

이미지1

6월 29일 성령 강림 후 셋째 주일 말씀 나누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오늘은 4개의 본문을 묵상하고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원고를 따로 준비를 안 했거든요. 그래서 흐름에 맡기면서 본문이 가지고 있는 직관적인 메세지를 따라서 묵상하고 돌아보는 시간들 그리고 또 마음의 결단을 하는 시간들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토닥토닥

오늘이 6월의 마지막 주일이구요. 이제 2025년도 이렇게 절반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제 또 절반인 7월 첫 주를 또 맞이하게 되겠죠. 
지금 이쯤에서 한 해의 절반을 살아온 나와 또 너와 우리를 서로 
“수고했다! 애썼다!” 
서로 토닥토닥 해주는 시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6월 대선이 있기까지 얼마나 마음 졸이며 또 분노하며 그렇게 기도하며 지내 왔는지 돌아보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그러면서 
“수고했다. 애썼다” 
나 자신에게 이제 토닥토닥 해주시고, 또 곁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향해서 같이 토닥토닥 수고했다라고 애썼다라고 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4개의 본문 4개의 질문

오늘 성서일과 말씀을 보면서 4개의 본문에서 4개의 질문들 돌아보는 질문들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2025년 절반을 지내면서 어떻게 보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들 순간들 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들에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는 나의 한계를 넘어서 도전해야 했던 과제가 있었는지. 그 과제는 무엇이었고 지금 그 과제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내가 직면한 도전 앞에서 또 물러서거나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는지. 그것을 붙잡고 끝까지 한계 끝까지 나아가 봤는지 돌아봤으면 좋겠구요.

세 번째는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내적 싸움은 무엇인지. 알고 보면 외부에 저 사람의 문제 상황의 문제 어떤 다른 조건들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 안에 있는 문제였던 걸 발견하죠. 저 사람의 잘못, 저 사람의 어떤 모난 부분 아니면 상황적으로 이랬다 핑계를 댈 수 있지만 결국 내가 감당해야 될 인내하고 참고 사랑하고 섬기고 가야 했던 내적인 싸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싸움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내 성품에서 빚어져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길 원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내 삶에 안주하고 있는 영역은 어딘지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있거나 아 그냥 이 삶에 그냥 매몰되거나 아니면 여기 안주하고 편안하게 머물고 싶어 하는 영역은 어딘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급진적이시지요. 그리고 전인적인 헌신을 바라시고 나의 전부를 원하시고, 또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이 첫 번째이기를 늘 원하십니다. 그 삶의 자리는 어딘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네 잠깐 한 5분 아니면 10분 동안 뭐 두 사람씩이든지 아니면 3명씩 4명씩이든지 서로 요 네 가지 질문을 가지고 잠깐 나눈 시간 가지고 본문을 좀 묵상하고 하면 좋겠습니다. 잠깐 중간에 끊고 요 네 가지 질문을 가지고 서로 나누는 시간 잠깐 갖겠습니다.

네 잘 나누셨지요 그러면 네 오늘 첫 번째 시편의 이야기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라

시편의 시인을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답답할 때 나 주님을 찾았고 또 밤새도록 손을 치켜들고 기도하며 내 영혼을 위로마저 마다합니다. 본문을 쭉쭉 살펴보면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기가 한 3번 정도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한숨만 나고 곰곰이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이것 때문에 너무 지쳐서 말도 안 나오는 상황들 가운데 있는 거죠. 너무 괴롭고 어려우면 잠도 안 오는 순간들이 있죠. 각성되고 나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왔을까? 왜 이렇게 삶이 이렇게 꼬였을까? 저 사람만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들이 막 일어나는 순간들 있죠. 그러면서 시인은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영원히 나를 버리시려는가? 하나님께서 다시는 내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려는 것인가? 하나님의 그 한결같은 사랑이 이제는 끝난 것일까? 아니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하나님 나를 축복하시겠다고 하셨던 그 약속은 어디로 갔을까? 하나님께서 그 자비를 잊으셨을까? 그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 그 진노가 하나님 나를 향한 그 따스한 사랑을 삼켜버렸을까? 하면서 반문하며 반문하고 그러면서 밤을 지새우는 거죠. 결국 우리가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셨을까? 하나님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 하는 고민들을 하게 되지요. 그런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때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죄성을 따라서 숨어듭니다. 하나님은 낯을 피하고 잠을 자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아니면 폭식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막 풀려고 애를 쓰죠. 근데 아무리 그래도 풀리지 않습니다. 근데 시인은 결국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일을 내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행적 하나하나 내가 다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장하신 그 일들을 다시 깊이 되새기겠습니다.

그러면서 시편 기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셨던 일! 본문의 내용들을 쭉 살펴보면 결국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는지.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폭풍 가운데 광야길 가운데 또 적들이 쫓아오는 가운데 홍해를 마른땅같이 지나고 했던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놀라운 행하셨던 그 놀라우셨던 놀라우신 일들을 기억하고 다시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를 정말 사랑하실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셨을까? 괴롭고 힘들고 잠이 안 오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하고 기억하고 되뇌이고 되뇌입니다.

다시 깊이 되새기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지. 하나님 나를 이렇게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지. 하나님 여기서 나를 만나주셨지. 하면서 다시 기억합니다. 결국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건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와 함께 하셨는지를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에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잠이 오지 않는 고통스러운 그 순간을 직면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결국 기도하는 자리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다시 또 올리고 하나님께서 영원 어떻게 나를 이끌어 오셨는지. 어떻게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나에게 주신 은혜들이 무엇인지를 기억해내는 것이겠죠. 주의사랑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해보라 하늘보다도 더 높으신 아버지의 사랑 크고 놀랍네 아버지 사랑 크고 놀랍네 내 어찌 그 사랑 잊으리 네 어찌 주의 긍휼 잊으리 내 영혼의 모든 소원 만족시킨 하나님 나 길을 잃고 헤멜 때 그 사랑 날 찾아내셨네 내 영혼의 모든 소원 만족시킨 하나님 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 반년 동안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곰곰이 돌아보며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힘들고 괴롭고 때로는 잠 못 이루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굳건하게 견뎌내는 우리 맑은 물 가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

오늘 두번째 열과의 본문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제 헤어지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제 엘리야가 하늘로 부름을 받고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될 시기임을 알고 길갈에서 베델로 베델에서 요단강으로 계속해서 옮겨가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엘리야는 가면서 계속 엘리사한테 이야기하죠. 넌 여기 남아라 그런데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의 뒤를 따라갑니다. 이 엘리야를 떠나보내며 또 혼자 남는 엘리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엘리사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엘리야를 뒤쫓아가고 엘리야를 계속해서 함께 했을까요? 엘리야는 엘리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 남아라! 라고 이야기하는 엘리야의 말에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결코 스승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하죠. 그러고 나자 마지막으로, 엘리야가 올라가면서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너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너는 뭐 어떤 게 필요하냐?” 라고 물으니까 엘리사는 이렇게 대답하는 거죠.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질로 받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고백이지요. 그죠. 엘리사는 엘리야가 행했던 그리고 엘리야가 함께 했던 하나님의 그 함께하심에 대한 거에 대해서 갑절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엘리사의 마음이 도전이 참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제 엘리야는 마차를 타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던져주죠. 그 순간에 엘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겉옷을 찢고 엘리야가 던져주는 그 겉옷을 취합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정말 나와 함께 하시렵니까?” 물으면서 엘리야가 옷을 쳐가지고 요단강을 가르잖아요.

자신도 동일하게 돌아오는 길에 그 겉옷을 요단강이 치면서 강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다시 엘리사가 건너옵니다. 엘리사는 어떤 마음으로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갑질로 받기를 원했을까요? 어쩌면 엘리사에게 가지고 있는 도전이었죠. 이제 스승님 없이 자기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서 남아있는 선지자가 되어서 이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또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감이 굉장히 컸을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엘리사는 이렇게 구하지요 스승님이 가졌던 능력의 2배를 가지길 원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가능합니다. 하나님 함께해 주십시오.

엘리사의 기도는 그거였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 앞에서 엘리사는 하나님 함께해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엘리야와 함께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해 주십시오. 그래서 엘리사는 이렇게 겉옷으로 강물을 치면서 이렇게 반문하고 있는 거죠. “엘리야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나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엘리사는 그것을 구했던 거죠. 자신의 한계 자신이 직면한 도전 앞에서 하나님 함께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구하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각자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 개발 새로 부서를 옮겨서 개발해야 되는 프로젝트들이 있고 또 우리가 또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어떻게 이 사춘기 아이들을 감당해야 될지 하는 어려움들도 있고 또 내가 내 일에서 새로 맡게 되는 일들, 한계들 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엘리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구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도전 앞에 물러서지 말고 뒷걸음질 치지 말고 두려워서 움츠러들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과 그 일들 앞에 굳건하게 서서 그 일을 감당해내는 맑은 물 가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 한계들 앞에서 잠깐 쉴 수 있죠. 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이 아이와 함께해 주십시오. 하나님 이 아이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내가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나를 붙잡아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 가족의 생계 하나님 책임져 주십시오. 하나님 내가 맡고 있는 부서의 일들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맑은 물 가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있는 도전이고 기도 제목인 거죠. 어떻게 보면 맑은 물교회 목사 하기 싫다고 이야기했지만, 목사로 있구요. 그러면서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상과 꿈이 아니더라도 하나님 우리 맑은 물 가족과 맑은 물을 하나님 이끌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맑은 물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어디에서 일하고 계시는지를 묻고 기도하고, 그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맑은 물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우리 한계 안에 머물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또 하나님께서 빚어가시는 그런 맑은 물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 해야 되겠죠. 네, 그렇게 기도하고, 저 자신도 직면에 있는 도전 앞에 한계를 넘어서서 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 안의 싸움

오늘 세 번째 말씀은 갈라디아서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를 자유케 해주셨다 근데 그 자유를 너의 육체 욕망을 쫓아가는 데 쓰지 말고 성령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데 서로 종 노릇 하는데 거기에서 자유를 누려라 라고 도전하지요. 그러면서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치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늘 이 갈등 가운데 있는 거죠. 결국 우리 안에 이 싸움이 있습니다. 매일매일 직면하고 있는 거죠.

내 본성을 따라 살 것인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따라 살 것인지. 내가 용서하고 용납하고 살아갈 것인지. 나의 가명과 방어 기제와 내 욕망을 쫓아서 내 욕심을 쫓아서 살아갈 것인지. 늘 갈등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육체를 쫓아서 살아가면 더러운 것 음행 시기 이단 분쟁 불리한 방탕 투기 그와 같은 것들 당짓는 것, 원수 맺는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분냄 술취함 이런 것들이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성령을 따라 살면 절제와 온유와 충성과 양선과 자비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를 맺어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전혀 다른 열매들인 거죠.

누구나 다 어떤 열매를 맺고 싶습니까? 라고 물으면 오른쪽에 보이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싶다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내가 직면하고 있는 이 싸움에서 내 안락과 내 마음을 세우는 나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종교적인 껍질을 쓰고 있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죠. 하지만 성령을 따라서 자기를 넘어서서 한계를 넘어서서 자기를 내어주는 자기를 비워가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겠지요.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제 성령 강림 후 세 번째 주일을 지나고 있는데, 결국 우리에게 성령이 와 계십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귀 기울이고 쫓아가며 살아가는 맑은 물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작은 등불 들고 비춰주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맺혀져 있는 성냥의 열매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분께서 우리를 가이드 해주십니다. 내 안에 계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귀를 그리고 하나님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갈등 관계 가운데 이런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여러 얽혀있는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령님께서 어떤 걸 원하시는지 구하고 묻고 말씀하시는 대로 그 걸음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이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병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열매가 맺어진다는 거죠. 사람이 변한다는 거잖아요.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 안에서 변화를 경험해 봅시다 우와 지난번보다 1년 전보다 아니 반년 전보다 변화된 것 같아요. 이 사람 앞에 안에서 변화가 나타난 것 같아요.

주님을 닮은 모습이 보여요. 늘 같은 고민으로 씨름하고 나눔이 비슷한 이야기로 흘러가지만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면 변화된 우리들 서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변화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급진적인 제자도

마지막 복음서의 말씀은 잘 아는 말씀이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 하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 다 연결되어 있는 말씀일 겁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인자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급진적으로 온전히 자신을 들여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사셨다는 이야기겠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안위를 위해서 편히 쉴 곳을 구하고 찾고 그렇게 살지 않으셨다는 이야기겠죠. 그리고서는 주님 이것만 하고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이 또 안정적이고 평안하게 지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 최우선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원하시지요. 네 그 어떤 우상도 우리 안에 두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 존재를 받으셔서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답게 또 하나님의 형상에 답게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십시다. 그분의 넓은 품 안에 우리를 던져 넣으십시다. 하나님 이것만 하고요. 하나님 이거는 아 이거는 좀 있다가 하나님 이거는 줄 수 없어요. 하는 영역들이 있다면 하나님 이것마저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맑은 물 가족들 또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전부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배이기 때문에 주님을 얻기 위해서 나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버릴 줄 아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잖아요.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 가장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의 전부를 팔아서 그 진주를 구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 이시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네 전부를 들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 이것을 얻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우리의 삶이길 바랍니다.

오늘 나의 우선순위에서 아니면 나의 최고의 가치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게 뭔지 안주하려고 하고 안전을 취하려고 하는 지점들은 무엇인지 주님께서 나를 급진적으로 아니면 또 어떤 지점에서 요구하시는 삶의 영역들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하나님 주님 앞에 이것을 드리길 원합니다. 주님 주님이 나의 전부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네 2025년 반환점을 이제 돌았습니다. 이제 남은 반년 또 열심히 살아가 봅시다 뭐 오늘 묵상했던 말씀처럼 또 반년을 살면서 이불킥하고 잠 못 이루는 또 힘겨운 어려운 괴로운 일들도 찾아오겠지요.

또 내 한계를 직면해야 되고 또 여러 가지 도전들이 우리 앞에 있을 줄로 압니다. 또 그리고 매일매일 씨름해야 되는 내 본성과 죄성과의 싸움도 늘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안주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들도 존재하구요. 그 직면해 있는 여러 가지 일들 앞에 예 이 경주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주님과 함께 맑은 물과 함께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