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하나님께 부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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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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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얼마만큼의 돈이 있으면 행복할까?

여러분 얼마만큼의 돈이 있으면 행복할까요?

어느정도의 돈이 있으면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당장은 차를 바꾸고 싶고… 오래된 전자기기 핸드폰과 아이패드등을 바꾸고싶네요. 내년에 민서 대학가면 이래저래 생활비와 등록금도 필요하구요… 아무튼 수중에 3-4천 정도 있으면 그래도 필요한 것을 바꾸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달 약 50만원 정도의 현금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어느정도의 돈이 필요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 모음집 안에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짧지만 묵직한 내용의 소설에서 우리에게 통찰을 줍니다.

소작농 파홈은 더 많은 땅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전 재산을 모아 땅을 사고 기뻐하지만, 곧 더 넓은 땅을 원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한 마을의 지주가 해가 질 때까지 걸어서 경계를 정한 만큼의 땅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파홈은 욕심에 이끌려 끝없이 달리고 또 달립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직전 출발점에 도착했을 때, 그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죽고 맙니다. 결국, 그가 얻은 땅은 그의 시신을 묻을 2평 남짓한 무덤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2:13-21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본문: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누가복음 12:13-21(새번역)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눅 12:15)

이어지는 비유에서, 한 부자는 풍년이 들어 곡식이 넘쳐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구나. … 이렇게 하자.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큰 곳간을 지어, 거기에 내 곡식과 물건을 다 쌓아 두자.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하리라.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안심하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눅 12:17-19)

하지만 그날 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되찾아갈 것이니, 네가 쌓아 놓은 것들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예수님은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 두면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눅 12:21)

이 부자는 재물을 쌓는 데는 성공했지만,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생명은 재물에 묶여 있었고,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고를 받습니다. 

탐욕의 위험: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

톨스토이의 파홈과 예수님의 부자는 같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은 단순히 돈을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이 아닙니다. 탐욕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돈과 소유를 삶의 중심에 두게 만듭니다.

성경은 탐욕을 심각한 죄로 다룹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 6:24, 새번역)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탐욕을 우상숭배로 규정합니다:

“탐심은 곧 우상 숭배입니다.” (골 3:5, 새번역)

탐욕은 하나님을 대신해 우리의 신뢰와 욕망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는 탐욕의 유혹에 쉽게 노출됩니다. 치솟는 집값, 자녀 교육비, 노후 불안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추구하도록 압박받습니다.

임금상승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고 은행 예금이자는 제자리 걸음이니 씀씀이는 커지고 들어오는 수입은 줄어드는게 뻔히 보이는 삶입니다. 무리해서 집을 구했는데 은행대출이자는 높아져가고 삶의 불안은 점점 커집니다. 경제적인 안정이 없이는 삶의 여유도 행복도 찾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SNS에서는 친구들이 새 차를 뽑거나, 고급 아파트로 이사 가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이 생깁니다.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트렌드는 조기 은퇴를 위해 극단적으로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삶을 부추기며 나도 그렇게 살고싶다는 생각도듭니다.

하지만 이런 탐욕을 부치기는 삶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요? 디모데전서 6:9-10(새번역)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유혹과 덫과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몰아넣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파흠이 보여주듯이 단순히 자신의 작은 땅에서 출발한 소박한 소망이 탐욕으로 발전하며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어갔습니다. 물론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탐욕은 우리를 경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습니다. 이웃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가 됩니다. 내 통장이 채워지기 전에는 이웃의 필요가 보이지 않습니다. 빚내서 집사라! 빚내서 투자하라는 자본주의 삶은 방식을 따라 살다보면 지금 당장 갚아야할 대출이자와 이번달 생활비를 제하면 누군가의 필요에 선뜻 주머니를 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욕망은 채워져도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탐욕은 삶의 추구와 방향을 바꾸어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신과 이웃을 어려운 곤경으로 몰아넣고 맙니다.

모든게 돈인 세상에 삽니다. 마음의 여유와 자신감은 통장에 들어 있는 현금에 비례한다는 말처럼 더 많이 쌓고 더 많이 축적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삽니다. 그런 세상에서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는 어리석다기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것처럼 비춰집니다.

그가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친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대박나고 풍년이 나서 창고를 더 크게 짓고 쌓아 둔 것 뿐인데

그를 향해 예수님은 어리석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당연한 삶의 방식인데

아니 이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인데 예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직하게 벌고, 극단적으로 아끼고 절약해서 투자해서 파이어족의 꿈을 이루었는데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아니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꿈을 이루었는데 그 삶의 방식에 대해 어리석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보면 지금의 자본주의 삶의 방식에 대해 어리석다고 말씀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자가 보여주는 마음의 대화에서 그의 어리석음이 나타납니다.

그는 오직 자신과만 대화합니다. 그리고 그의 투자와 재산증식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됩니다.

그의 삶의 목표와 이유와 만족은 오로지 그가 쌓아둔 재산에만 있습니다.

돈이 그의 인생의 목표였고, 돈에서 오는 안정감이 그의 삶의 이유였고, 돈에서 오는 만족이 다였던 것이 부자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가 자신의 생명을 소유에 기초하여 두었음이 그의 잘못임을 보여주싮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기를 멈추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한 삶을 살 것을 도전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떤 삶이 하나님께 부요한 삶일까요?

하나님께 부요한 삶: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부요한 삶”은 무엇일까요?

삶의 추구와 가치의 방향을 바로잡는 것일 것입니다. 부의 추구에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하나님께 부요하다는 것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부요가 아닌 영적인 가치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진정한 풍요로운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과 더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우리에게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추구하라고 도전합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그분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그분을 욕망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기 위해 말씀 앞에 나아가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다보면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세상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공급하시고 이끄는 삶임을 배웁니다. 그러니 자연히 감사와 자족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이 세상이 돈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비춰지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공급하시는 세상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더, 더를 외치는 세상에서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은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통장의 숫자는 그져 스쳐지나가는 숫자일뿐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을 믿으며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삶은 돈의 지배와 탐욕의 유혹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선물처럼 주어진 것을 고백할 때 우리는 내 삶의 주인이 돈이 아니라,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삶은 관대한 삶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은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삽니다. 적은 돈이지만 나누면서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채워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베푸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결론: 오늘,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선택합시다

우리는 모든 게 다 돈인 세상에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은 통장 잔고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채우십니다. 우리는 더 많이 쌓고,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고, 소유를 나누는 삶으로 초대받았습니다. 맑은물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행복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