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나라 잔치의 자리로

본문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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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일만에 땅을 밟았습니다.

8월 29일 금요일 고용승계를 부르짖으며 고공농성을 벌이던 한국옵티컬 해고 노동자 박정혜씨(41세)가 600일만에 땅을 밟았습니다. 전날 민주당과 정부의 노사교섭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듣고 발 디딜틈없는 고공이 아니라 땅을 딛고 대화를 이어갈 소망으로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불안한 고공에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하던 식사가 안전한 땅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편안한 식사가 주어지길 소망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사를 검색해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전쟁같은 세상에서 하늘에 올라가 목숨을 걸어도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세상이

목숨걸지 않고 땅에서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세상으로 바뀌어가길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전쟁같은 세상이 사람사는 세상으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희망을 품습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식사와 잔치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유독 식사와 잔치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상징이었던 세리 레위의 집에서 식사하셨고, 시몬의 집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여인의 향유 부음을 받으셨으며, 욕심 가득했던 삭개오와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언제나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경계선을 허물고, 모든 이들을 품는 사랑의 장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잔치자리의 비유를 말하시고 둘째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잔치를 여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고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식사를 나누며 예수님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뜹니다.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통해 오는 하나님나라는 풍성한 잔치의 자리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노래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성대한 만찬을 차려주시고 축 쳐진 내 고개를 세워주시니 내 잔에 복이 넘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세상은 원수들에게 쫓기는 전쟁같은 세상에서 풍성한 잔치이고 기쁨과 만족과 복이 넘치는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잔치이고 하나님이 베푸신 풍성한 식탁이 우리 앞에 펼쳐져있습니다. 우리는 넉넉하게 베푸시는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고, 평화를 맛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잔치를 베푸는 존재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잔치를 이웃과 세상 가운데 값없이 넉넉하게 펼쳐놓습니다. 

잔치의 눈으로 오늘 성서일과를 살펴봅시다.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과 성서일과의 내용을 잔치의 맥락에서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풍성한 잔치를 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잔치를 거부하고 그 잔치를 난장판으로 만듭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렘 2:13) 잔치를 전쟁터로 바꾸어 버립니다.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다 채워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 식탁을 거부하고 바알이 벌려놓은 우상의 부스러기를 좇아 갔습니다(시 81:10-11). 
예수님은 식사의 자리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가 자리경쟁하며 다투는 이들을 향해 잔치에 집중할 것을 말씀 하십니다. 
히브리서의 이야기는 하나님나라 잔치에 참여한 이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환대하는 관대한 삶을 살라고 초대합니다. 
앞서 하나님나라 잔치의 손님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를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이어서 잔치의 주인이되어 차별없이 거저받아 잔치를 누렸으니 너희도 대가를 바라지말고 차별없이 거저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풍성하고 생명력 넘치는 하나님나라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매일의 일상과 삶을 잔치로 바라보고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식탁을 누리길 바랍니다. 하나님나라 잔치는 우리를 손님으로만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 관대하게 잔치를 여는 주인으로 세우십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하고 이타적인 환대를 통해 더 큰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누리고 경험하는 살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전쟁터 같은 세상

하지만 우리 사는 세상은 잔치이기보다는 전쟁터에 가깝습니다. 삶은 고단하고 무겁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경쟁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위해 자리 다툼하는 삶으로 우리를 몰아 넣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잔치의 자리에서 잔치보다는 자리다툼하는 경쟁적인 삶으로 비춰집니다. 교만한 마음은 참된 생명의 근원이자 풍성한 잔치의 주인인 하나님을 거부하고 아무것도 채워줄 수 없는 아니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는 ‘터진 웅덩이’를 파는 어리석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자본의 논리는 정서적이든 경제적이든 서로의 관계를 이익관계로 만들고 득과 실을 따라 경계를 짓고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경계가 사라지고 계산이 필요없는 한 몸을 이루는 부부의 관계에서도 서로가 다른 통장을 쓰고, 가사노동의 시간을 똑 같이 구분하며, 각자의 집안을 위해 쓰는 돈은 십원단위까지 맞춰야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계 안에는 균등함은 존재할지 모르나 둘이 하나되는 신비의 연합은 사라지고 자신을 내어줌으로 얻는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부부관계가 이렇게 나타나는데 하물며 다른 관계는 어떻겠습니까?
이런방식의 관계맺기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와서 서로를 이익관계로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받으시고 사랑하셨지만 우리는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용납하지 못합니다. 서로 다름을 불편으로 받아들이고 적당한 경계를 짓고 거리두기를 합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적인 사랑이 교회 공동체를 튼튼하게 하나로 묶어내지만 자기 보호와 경계짓기는 주님의 몸을 흩어놓습니다. 
자본의 논리는 차별없고 경계가 사라진 은혜와 환대로 주어진 선물의 잔치자리를 계산과 이득을 따지고 차별짓고 배제하는 시장의 자리로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의 삶은 종종 전쟁터처럼 느껴집니다. 경쟁, 갈등, 생존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를 때가 많습니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생존할 것 같습니다. 자본의 논리는 우리를 끊임없이 경계짓고 배제하고 차별을 부추깁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나라 잔치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어떻게 하면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파지 않고 기름진 땅으로 인도하시고 풍성한 열매와 아름다운 것으로 먹이시는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전쟁터에서 잔치로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높은 자리에 앉지말고 낮은 자리에 앉아라”는 단순한 처세술이 아닙니다. 먼저는 잔치의 자리에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들을 향한 질책입니다. 잔치의 자리를 서로 경쟁하는 전쟁터로 만들며 스스로 웅덩이를 파려는 이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식사와 잔치의 문화는 식탁에서 자리를 통해 누가 주인과 더 친분이 있는지를 통해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이 명예와 수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주인과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상징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주인과 먼 낮은 자리에 있다가 주인과 가까운 자리를 얻으면 영광을 얻었지만 주인과 가까운 높은 자리에 있다가 주인과 먼 낮은 자리로 밀려나면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잔치의 자리는 서열의 문화 계층의 문화였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서로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을 유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잔치와 식사의 문화가 서열과 경쟁의 문화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자리는 단순히 우정을 나누고 순수한 사귐을 위한 행위이기 보다는 서로 상호보상이라는 이권의 관계를 만드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자리였습니다. 관계의 본질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 본능적으로 계산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이익에 되지 않는가에 따라 사람을 경계를 짓고 차별이 당연시 되는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식탁의 자리, 잔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유대사회의 단면과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잔치자리가 명예를 얻고 이익을 쌓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경계짓고 차별하는 전쟁터로 바꾸어 버렸음을 잘 드러내줍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사는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엉망으로 망쳐버린 이스라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식사자리에서 자리다툼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문화와 가치체계를 무너뜨립니다. 잔치를 서열의 전쟁터로 만든 그들을 향해, 전쟁터가 아니라 잔치자리 하나님의 밥상으로 다시 둘러 세우십니다. 자리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그들의 눈을 잔치로 돌리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식사자리의 주관자인 주인에게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자리는 다투고 경쟁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정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자리를 청하는 주인의 관심사가 이전의 주인과 다릅니다. 이전의 주인은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에게, 스펙을 쌓고 주인에게 잘 보이는 이들에게,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면 이 주인은 겸손한 사람들,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11절

자리는 자신을 높이고 경쟁하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역설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잔치자리는 인간이 스스로 높이고 경쟁하고 쟁취하는 시도는 결국 낮아짐(수치심)으로 드러날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이들은 그분의 은혜로 높임을(명예와 영광)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 자신을 높였던 바리새인의 기도는 거부당하고 자신을 낮추었던 세리이 기도를 들으시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주인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자세와 태도를 원하시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근본 하나님이시지만 종의 형체로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혀주셨습니다.

식탁의 자리에서 자리다툼을 하는 삶으로는 거꾸로된 하나님나라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경쟁의 삶으로 뛰어드는 교만은 하나님의 관대한 잔치를 스스로 거부합니다. 마치 아버지의 재산을 다 말아먹고 거지꼴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잔치자리를 연 아버지를 끝내 거부하는 큰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전쟁터 같은 세상이지만 이 세상은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입니다. 우리의 삶을 전쟁터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경쟁하고 쟁취하고 다투는 삶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하나님나라의 잔치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경쟁과 쟁취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기대어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잔치에 참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나라의 기름진 것과 아름다운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자리를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로 바라봅시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 여름에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잔치의 은혜를 경험 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직장생활 속에서도 그 속에서 내 삶을 붙들고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바보같아 보이는 겸손한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잔치의 손님에서 잔치를 베푸는 주인의 자리로

예수님은 잔치자리의 손님의 자리에서 잔치를 베푸는 주인의 자리로 이야기를 전환하십니다. 잔치를 베풀때에 상호보상이라는 이득의 득실에 따라 사람을 초대하지 말고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을 초대하고 계산없이 거저 베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나라의 잔치는 계산적이고 이익을 따지며 돌려받기 위해 베푸는 잔치가 아니라 은혜로 베풀어지는 관대한 잔치의 자리입니다. 이런 잔치를 베풀 수 있는 것은 궁극적인 되돌림, 부활의 때에 관대한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종말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잔치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잔치를 베푸는 관대한 주인으로 믿는 삶은 우리의 삶에서 계산없이 그저 베푸는 관대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성서일과의 히브리서는 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말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전쟁같은 세상에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베푸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계산없는 베품과 우정,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상관없이 차별없이 대하는 환대와 베품, 선한 삶과 나눔의 삶을 통해 우리의 존재와 삶이 잔치가 되길 원하십니다.

맑은물 전체 모임과 가정교회 모임이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경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전쟁같은 세상을 살지만 우리의 만남과 예배와 모임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경험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세상과 이웃에게 하나님나라의 잔치가 되는 삶으로 나타나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3:1-8, 15-16

서로 사랑하기를 계속하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되, 여러분도 함께 갇혀 있는 심정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도 몸이 있는 사람이니, 학대받는 사람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모두 혼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없이 살아야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히 내게 손댈 수 있으랴?"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