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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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마음을 아는 것은 어렵다.
마음을 아는 일은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알아주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서로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더 오해가 쌓이고 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대화하는 나의 마음도 내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게 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과 마음들 때문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못하거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대화는 참 어렵습니다.
여기서 깨알같은 광고 하나!!! 어려운 관계에서도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책이 있습니다. 많이들 아는 [비폭력 대화]입니다.
책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비폭력대화를 익히면 습관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고 느기고 원하는가를 의식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 역시 경청하면서도 정중하고도 솔직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표현하게 된다.
앞으로 맑은물 필독서로 함께 꾸준히 읽고 읽을 뿐 아니라 대화의 습관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습(훈련)을 같이 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때마침 비폭력대화 강좌가 있습니다. 지금 참여자들은 열심히 비폭력 대화 책을 같이 열심히 읽고 있다고 합니다. 9월 27일 마지막주 토요일 오전 11-1시 양산시 명동에 있는 산책같은 수다 최지현강사 강좌 제목은 비폭력대화로 자녀와 소통하기 실천편이지만 비폭력대화법을 이해하고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맑은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읽고 공부하고 훈련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강추하며 추천드립니다. 문의는 주최자 이하정(010-6688-1641)님에게 하시면 됩니다. 이 모임이 대박나길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전하신다.
다시 설교로 돌아와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서로의 마음을 아는 것은 어렵고, 심지어 나의 마음을 아는 것도 어려운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요? 작디작은 우리의 지혜와 마음이 무한히 넓고 한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하나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알리시고 마음을 숨김없이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고 나타내시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계시중에 분명한 것이 성경의 말씀이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성경 말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자신의 뜻과 마음을 나타내십니다.
이번주 함께 묵상한 성서일과의 본문들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그들을 끝까지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시편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에 대해 한탄하시면서도 약한 자들의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죄인 중의 죄인이었던 바울을 변화시키시고 복음 전하는 사도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잃어버린 자를 끝까지 찾으시며, 찾았을 때 잔치를 벌여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늘도 네게의 본문을 다 살피고 자신을 알리시고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응답하여 사는 우리의 삶이길 바랍니다.
어리석은 사람들
예레미야와 시편의 말씀에서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한탄과 심판의 말씀을 만납니다. 예레미야서는 22절에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식들이요, 전혀 깨달을 줄 모르는 자식들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에는 슬기로우면서도, 좋은 일을 할 줄 모른다."
고 한탄하며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한탄과 심판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어리석은 자들, 제 속으로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말들 하면서, 썩은 일 추한 일에 모두 빠져서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모두들 딴길 찾아 벗어나서 한결같이 썩은 일에 마음 모두어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언제나 깨달으랴. 저 악한들, 떡 먹듯 나의 백성 집어삼키고 야훼는 부르지도 않는구나.
하나님께서는 착한 일을하며 슬기로운 사람을 찾으시지만 모두가 썩고 추한 일에 몰두하는 어리석은 자들만 있음을 보시고 한탄해 하십니다.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단순히 지적인 모자람이 아닙니다. 지적인 모자람과 시험점수가 안나오는 것은 배우고 익히면 해결이 됩니다. 성경의 어리석음은 끊임없이 진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입니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잘 보여줍니다.
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22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23 그들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 발 짐승이나 기어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니,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은 하나님을 알만한 증거들이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기를 거부합니다. 생각과 마음이 허망하고 어두워져 스스로 지혜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있지만 선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정욕에 이끌려 사는 존재가 될뿐입니다.
예레미야와 시편에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썩은 일 추한 일에 빠집니다. 모두 제 길에서 벗어나 착한 일을 거부하고 썩은 일에 마음을 둡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떡먹듯이 집어 삼킵니다. 욕망과 경쟁에 내몰려 서로의 존재를 갉아먹는 삶을 삽니다. 악한 일에는 똑똑하지만 착한 일과 거리를 둡니다.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떠나 부패한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부패한 마음은 자신의 부패함과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척하나 욕심에 이끌리고 유혹에 넘어지며 마음이 완고하게 굳어져서 자기도 모르게 배제와 혐오와 거짓과 폭력에 가담하게 됩니다.
직관적이긴 하지만 오늘 나는 어리석은 자에 속하는지? 지혜로운 자에 속하는지 돌아봅시다. 내 존재와 삶에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따라 살기를 싫어하는 부분은 있는지 살펴봅시다. 성경은 특히나 잠언에서 어리석은 우리를 향해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지혜의 말씀을 들으라고 권고합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두고 있는지, 그 말씀이 내 존재와 삶을 지탱하고 이끌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어리석은 자에 대해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오늘 나의 귀에 들려지길 바랍니다. 어리석음에서 돌이키는 것이 바로 지혜의 시작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잠언의 말씀처럼 그분의 음성이 우리의 존재 깊이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이끄시는 손길을 따라 걷는 우리의 삶이길 바랍니다.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리로 나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어두움과 악함을 깨닫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함께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오길 기대하고 바랍니다. 시험기간을 지나며 교회 예배시간과 관련해서 밀당이 이어집니다. 시험의 부담은 크고 주일에 가정교회든 전체교회든 그 모임과 예배시간이 한없이 무가치해 보이기에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아이들과 그래도 가야지! 내가 왜 가야하는데?하며 밀당과 줄다리기를 합니다. 밀당과 줄다리기를 하다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서 이 시간만큼은 놓치기 지키기를 바라는 욕심도 일어납니다. 바라기는 아이들이 스스로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예배하고 안식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길 바랍니다.
어리석은 백성을 향한 한탄과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는 흘러넘칩니다. 예레미야 4:27은 내가 온 땅을 황폐하게는 하여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은혜와 긍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어리석은 백성이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횡포 속에서 하나님은 비천한 자들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시편 14:5-6에서 하느님께서 옳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니 저자들은 겁에 질려 소스라치리라. 비천한 자들 생각을 너희가 비웃지만 야훼께서 그들을 감싸주신다. 어리석고 악한 자들이 떡 먹듯 하나님의 백성을 집어 삼키는 중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편이되시고 그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악이 팽배하고 정의가 사라진 것 같은, 암흑같은 세상 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자비와 긍휼로 당신의 백성의 편이되시고 그들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리석고 악한 자들이 돌아오기를 심판 중에도 기대하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악이 팽배한 세상 중에 당신의 백성들의 편이 되시고 보호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맑은물이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 바울
디모데전서에 나타나는 바울의 고백은 어리석었던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의 표현으로는 잃어버린 바된 사람이 찾은 바된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저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잃어버렸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찾은바 되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어쩌면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의 자기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13절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절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6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 드려내 보이심으로써.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다. 그분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가 넘치고 오~래 참으셨는지 그 마음을 이해하고 압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알고 받아들이고 그 발견되어진 앎 안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발견되어지기 전에 그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압니다. 훼방자, 박해자, 폭행자였습니다. 죄인중에 우두머리 수괴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기전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삶의 비참함을 알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어리석은 훼방자, 박해자, 폭행자의 삶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더 컸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셔서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래참음과 인내가 더 커서 죄인 중에 우두머리의 어리석음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 안에서 이 자비를 통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지혜로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바울은 지금 변화된 자신의 삶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보고 고백합니다. 나 같은 죄인 중에 우두머리도 주님이 오래참고 변화시키셨으니 여러분도 그분 안에 발견되어지고 변화될 수 있다고 그런 본보기로 주님이 나를 세우시고 그 일을 지금 감당하고 있노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통해 그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내 안에 머문 그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머물기를 바라고 전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입니다. 과정과 상황과 이야기는 제각각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의 오래참음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고 있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복음송이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이라는 곡으로 손영진님이 부른 노래입니다. 나중에 유투브로 한번 찾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노랫말만 잠시 옮겨봅니다.
만일 나의 생에 주님이 없었다면 지금 내 모습 이대로 남아있을까 끝없이 솟아나는 슬픔과 뜻 모를 외로움으로 내 영혼 어둠 속을 헤매고 있진 않을까 나는 아무 공로 없으나 주님은 나를 부르시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주시고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내 영혼 짓누르던 짐을 비둘기 날개 짓처럼 가볍게 하셨네
만일 나의 생에 주님이 없었다면 지금 내 모습 이대로 남아있을까 덧없이 오고 가는 인생길 뜻 모를 삶의 의미를 헛된 곳에서 찾아 헤매고 있진 않을까 나는 갈 길을 몰랐으나 주님은 나를 이끄시어 가장 복된 삶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거절할 수 없는 부피로 다가온 사랑의 주님 그의 생명의 빛에서 나는 거듭났네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라 나의 공로로 되어진 것이 전혀 없도다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라 그는 내 영혼의 주인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그 안에 머뭅니다. 어리석음에서 돌이켜 변화된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이유를 발견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얼마나 큰지 돌아보고 생각해봅시다. 그 은혜와 자비 안에서 지금 누리는 믿음과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누려봅시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헤가 지금 내 삶을 지탱하고 이끌고 있음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이유를 발견해봅시다.
가정교회에서 바울의 고백을 나의 버전으로, 손영진씨의 노래를 나의 버전으로 적어보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는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은 하나님을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하나님의 마음을 위해 산다고 착각하며 사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향해서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의 이야기를 통해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지내셨고(시편 14편의 비천한 자들 생각을 너희가 비웃지만 야훼께서 그들을 감싸주신다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들을 가까이 하고 함께 밥을 먹으셨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비난하고 투덜거리는 말을 들으시고 두 이야기를 들려주신거지요.
어떤 목자에게 양 일백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고 찾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 양을 찾으면 친구와 이웃을 불러다 잔치하며 함께 기뻐하지 않겠느냐?
마찬가지로 어떤 여인에게 드라크마 동전 열 개가 있는데 하나를 잃어버리면 온 집을 뒤져서 찾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 동전을 찾으면 마찬가지로 친구와 이웃을 불러다가 잔치하며 함께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찾아 구원하는 것이다. 그들을 배제하고 멸시하고 거리두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며 찾은 이들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다른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왔다. 예수님은 바로 잃어버린 이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외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리석은 자들이 돌이켜 지혜로 나아오는데 있습니다. 찾아지고, 돌이키고, 회개하는 이들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공동체이어야 하고, 교회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변화와 돌이킴과 발견되어지는 자리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고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모른다면 우리끼리의 공동체로 전락하고, 우리가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한 생명의 소중함에 눈뜨지 못할 것입니다.
맑은물이 20여년을 지내오며 많이 부족한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요?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께 발견되어진 사람들을 잘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죄송스럽고 때로는 위기로도 다가옵니다. 물론 지내오는 동안 우리 안에서 변화와 성장은 있어왔지만 맑은물교회를 통해 구원받고 세례 받는 사람이 드문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고인물은 썩는다고 합니다. 맑은물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지금은 젊은 교회로 보여지지만 이대로 나이들어가는 교회가 될 것 같습니다. 부산에 일자리가 없으면 아이들은 타지로 떠나고 지금 중대형교회가 보이는 전철을 고스란히 밟으면서 노령화되어 가지 않을까요? 우리도 꼭 그렇지 않겠지만 어쩌면 오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보이는 태도들을 보이는 사람으로 전락해 있지 않을까요? 교회생활 오~래한 꼰대가 되어갈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필요와 나의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봅시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살펴봅시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우리 가정교회와 맑은물에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 주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혼이 있는지 함께 찾으며 나를 통해 이 복음이 증거되고 전해지길 기도하며 살아봅시다.
흘러라 맑은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봅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동참해봅시다. 어리석은 자를 한탄하며 심판하시지만 그들이 돌이키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하나님!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 잃어버린 자를 찾고 찾으시는 하나님! 죄인 하나가 돌이켜 회개하면 천국잔치를 열어 기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가 잇대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맑은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잇대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찾은바된 우리의 존재와 삶을 기억하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발견되어지고 찾아지는 사람들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우리의 존재와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고 반영되는 삶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