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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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때때로 우리는 버거운 일들을 만나면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말을 통해 믿음을 내가 소유한 어떤 측정할 수 있는 무엇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 대상의 문제입니다.
믿음을 더해주소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점점 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따라가려니 믿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일흔에 일곱번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려면 자신이 가진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믿음이라는게 참!! 신기합니다. 믿음은 내가 가지고 소유하고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고.
믿음의 신뢰의 문제라고, 대상의 문제라고, 순종의 문제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말, 한 되, 한 줌도 아닙니다.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거기다가 겨자씨는 아주 작은, 어떻게 보면 가장 작은 씨앗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을 더해달라는 요청에 겨자씨 한 알을 이야기하시며 믿음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 대상의 문제라고 제자들이 전혀 생각지못한 관점으로 전환시키십니다.
내가 더 많은 믿음을 가지면, 내 믿음이 더 강하면!!! 이라고 생각했던 제자들에게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뢰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하나님과의 일치의 문제임을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작아보여도 그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하나님과 일치를 보이고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전혀 뜻 밖의 일을 행하십니다.
오늘 우리 삶에 어려움이나 한계에 직면한 일들이 있을까요? 그 어려움과 한계에 직면하며 나의 믿음의 부족과 나의 능력의 부족을 탓하며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더 많은 믿음을 달라고 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너의 믿음의 문제, 너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며 따르는 순종의 일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의 문제와 상황과 한계를 바라보고 이겨나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문제를 던져 바다에 심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두가지 찬양이 생각납니다.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 올 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바를 볼라 헤매이고 있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듯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분 계시네
지금도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사망과 어둠의 권세 물리치신 예수님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늘을 바라보라 드넓은 저 바다도 온 세상 지으신 주님의 솜씨라
먹구름이 다가와 태양을 가려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섭리라
모두 고개를 들고 어둔 마음을 열어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너와나 지으신 주의 놀라운 손길 우리 다함께 주를 찬양해 찬양해
온 하늘과 땅위의 만물아 겸손히 무릎꿇고 주의 위엄 앞에 경배하라
들에 핀 꽃을 보라 하늘을 나는 새도 만물을 지으신 주님의 솜씨라
눈보라가 닥쳐와 온 땅을 덮어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섭리라
네! 우리의 믿음의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콘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을 향한 마음, 하나님과 일치하는 삶이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이미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께 집중하는 우리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과 지혜로 나의 한계와 어려움과 도전을 이겨나가는 맑은물이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입니다.
이어지는 무익한 종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정서와 잘 맞지 않지만 당시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본문을 잘 이해해가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시한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한 종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수고 많았네! 와서 좀 쉬게!”라고 말할까요? 이게 우리 정서상 맞는 이야기 인것 같지만 전혀 반대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요즘 개그프로그램에 알바생이 사장 면접본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정말 정반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인은 일하고 돌아온 종에게 저녁을 준비시키고, 자신이 먹는 동안 시중까지 들게 합니다.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종은 얼마나 허기가 졌을까요? 거기다가 그 종이 명령대로 잘 시중들었다고 해서 고마워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우리 기준으로보면 참 가혹해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의 주종관계 속에서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주인이 이런 상황을 당연시 여겼듯이 종도 이런 상황을 당연시 여깁니다.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답하는 종의 대답속에서 일반적인 주종관계의 문화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쓸모없는’이라는 단어는 정말로 쓸데없는, 무가치한, 악한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크레이오스라는 쓸모없는 종은 ‘의무를 다했지만 특별히 칭찬받을 만한 공로가 없는’이라는 의미로 특별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 없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입니다.
참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입니다. 암튼 지금의 우리 상황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특별한 공로가 아니라 마땅한 의무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로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희생한 것이 마땅한 의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본전생각이 납니다. 내가 일 다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헌신 했으면 이정도 반응은 해줘야 되는거 아닌가? 내가 돈 많이 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과 봉사는 사랑과 감사에서 우러나야 하는데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과 반응 등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자연스레 본전생각이 납니다.
본전생각이 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빚진 자 취급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만큼 수고하고 헌신했는데… 내가 힘든 중에 헌금하고 기부했는데… 하며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빚진 자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여전히 불편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예수님의 무익한 종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공로주의, 본전 생각에서 해방시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어 서로에게 종노릇하며 서로를 섬기고 하나님께 허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의 순종에 순수한 동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보상을 바래서가 아니라 주인을 사랑하기에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응답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예수님의 이 이야기는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헌신과 봉사와 섬김과 희생을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마땅히 반응하는 작은 일일뿐입니다.
권리에 익숙한 시대, 과잉 서비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무익한 종의 이야기는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공동체에서 그리고 각 가정에서 우리는 권리를 주장하거나 서로를 빚진 사람으로 대할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한 섬김과 서로를 향한 헌신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순종이 무익한 종의 이야기처럼 자발적이고 사랑에서 우러난 섬김과 돌봄과 헌신이길 바래봅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 본전 생각이 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은혜의 흘러넘침으로 나타나는 헌신과 섬김이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진지하게 무익한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지만 우리가 겸손히 순종하며 서로를 향해 사랑의 종노릇할 때 우리의 참 주인이신 그분이 우리를 친구로 부르며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며 나아가길 바랍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주어진 섬김의 길을 묵묵하게 감당하며 무익한 종이라 답하는 맑은물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