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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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아주 오래된 복음송 중에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노래의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 하시네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위로가 되고 격려가되고 힘이 됩니다. 지난 수요일 방구석기도회에서는(방구석 기도회가 뭐지? 하는 분들이 혹시 있지는 않겠죠? 매달 1번 둘째주 수요일 밤 9:30에 맑은물이 함께 줌에서 모여 기도하는 모임입니다.) 각 가정교회를 위해 기도했고, 가정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에 한 사람, 한 사람 명단을 올려 놓고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떠올리며 기도하니 기도가 조금 더 실제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군가가 날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은 알게모르게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랫말 속의 누군가는 기도하는 누군가이기도 하지만 바로 우리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7:24-25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보좌에 앉으셔서 우리의 사정을 멀찍이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할 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되는지 모릅니다.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고,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십니다.
방구석 기도회를 줌으로 하니 좀 어색하고 화면으로 함께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실재적인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함께 비전이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찬양의 첫 소절이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였습니다. 순간 ‘아! 그렇지! 지금 우리는 하늘 보좌 앞에 모여있는 것이지! 화면을 보고, 유투브의 찬양을 틀고, 홀로 찬양을 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보좌 앞에 모인 것이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어색했던 방구석 기도회를 새롭게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우리의 상황보다 위해 거하시고,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주님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기도하십니다. 말씀을 마치셨다고했는데 무슨 말씀을 마치셨을까요?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고별강화의 제일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유언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가룟유다는 어둠속으로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셨습니다. 다른 보혜사 곧 성령님을 약속하시고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라 말씀하시고 서로 하나되어 예수님처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이제 이 밤이 지나면 예수님은 모진 고문과 심문 뒤에 십자가에 오르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길은 패배와 실패의 나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의 영광임을 드러내고 나타내십니다. 바로 앞문맥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와 패배가 아니라 승리와 영광이듯이 제자들이 받는 고난과 환란은 실패와 패배의 결말이 아니라 승리와 영광으로 가는 과정임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이 떠난 후 제자들이 받을 미움과 고난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긴 고별강화를 기도로 마무리하십니다. 예수님의 고별강화를 16장에서 마쳐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승리의 선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17장에 이르러 분위기가 사뭇 바뀝니다. 제자들을 향해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보며 말씀을 나누시던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시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십니다. 그리고는 우러러 보시며 시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기도로 마무리를 지으시는 걸까요? 어쩌면 기도는 당연한 것이었기에 왜 기도하셨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기도하셨는가가 더 어울리는 물음일 것입니다.
제자들을 하나님께 의탁하심. 예수님은 13장부터 아주 긴 고별강화, 설교를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설명하고 가르치는 언어의 한계에 다다른 예수님은 제자들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기도로 고별강화를 마무리하십니다. 가르치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인간의 깊은 두려움과 절망을 어찌할 수 없고, 사람의 변화는 말에 있지 않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설득하는 것을 넘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제자들을 직접 의탁하십니다.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이심. 톰라이트는 17장에 나오는 이 기도를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로 풀어냅니다. 구약의 대속제일에는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을 위해, 그다음 제사장들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백성을 위해 속제 기도를 드립니다. 17장의 예수님의 기도의 구조를 살피면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제단에 오르기 전에 자신을 위해,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오고오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큰 울림과 도전을 줍니다. 예수님마저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하나님과 하나이셨던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자신을 위해,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온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있을까요? 기도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맑은물이 되길 바랍니다.
한계를 만나는 자리, 무언가를 앞두고 마음이 분주하거나 초조해지는 시간, 아이들의 학업과 관계와 미래가 불투명하고 답답해지는 순간,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무가치해지게 느껴지는 순간, 시험이 닥치고, 고난이 다가오고,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기도하셨던 것 처럼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상황 넘어게 계시는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나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가정교회와 교회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이 사회와 온 세계 열방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기도합시다.
말로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있습니다. 온갖 노력을 다해보아도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이 있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다가가지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의 일들이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는 시선이 바뀝니다. 땅의 현실과 나의 한계와 상대방이 준 상처가 크게보이다가도 기도의 자리에서는 상황 넘어에 일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주의 일하심이 보이고, 나를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함께하심을 경험합니다.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지키고 용기와 힘을 얻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니 순간순간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 아침을 시작하며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상황, 사람들 앞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께 의탁합시다. 변하지 않는 상대방과, 아이와,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그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하나님은 내 마음을 나의 존재를 바꾸어 가십니다. 함께 기도하는 맑은물이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가정교회로 모여 우리의 삶을 나누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삶을 나누고 그것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맡기는 기도로 나아갑시다. 방구석 기도회가 있습니다. 좀 늦은 시간이지만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나아오는 분들이 있어 참귀하고 감사하고 좋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더 자주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잠시 하늘을 우러러 봅시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향해봅시다. 지금 내가 가진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내 일상의 삶의 자리에 하늘을 우러러보아야 할 지점들 상황들 순간들 공간들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