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공간, 열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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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on

잠간 나누어봅시다.
나의 존재와 삶에서 나를 움추러들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두려움이나 걱정, 과거의 상처나 한계 등)
그림자공간들
SNS를 통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알리고 자랑하며 삽니다. 맛집, 요리, 여행지 등이 자주 피드에 올라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삶은 여유있고 활기차보이지만 정작 홀로 있는 시간,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그 고요한 시간을 마주하면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고요함, 침묵을 사람들은 어색해하고 불안해 합니다. 진실된 나를 마주할 내면의 힘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경제적 불안, 미래에 대한 염려,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 타인에 대한 피곤함과 상처로 힘들어 합니다. 저마다 마음의 문, 관계의 문을 걸어잠그고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타인이 내 공간에 더 깊이 들어오는 것을 힘들어하고 불안해하고 불쾌해합니다.
어쩌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체제 안에 살면서 우리의 내면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타자를 향한, 타인을 향한 사랑과 연대와 관계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모습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점점 세상을 두려워하고 움추러들고 밖으로 타자를 향해 나아가기를 힘들어하는 건 아닐까요?
오늘 어쩌면 같은 장소일 것 같은 공간에서 두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두렵고 움추러든 삶의 자리에서 그럼에도불구하고 밖을 향해, 이웃을 향해, 타자를 향해 손을 뻗고 연대하고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공간 다른 느낌
요한복음의 말씀은 지난 부활절 둘째주일 말씀에서 조금 더 긴 본문으로 한번 살펴보았던 말씀입니다. 어?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하셨죠? 이때 악뮤의 새앨범 소문의 낙원 중에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곡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나타나는 제자들이 모여있던 그 공간의 분위기, 느낌, 온도, 공기를 상상해봅시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스스로 닫아걸은 닫힌 공간에 모여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막함과 두려움,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절망, 예수님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한자리에 모여 있지만 서로 감히 말을 걸 수 없는 거리감등이 그 닫히 공간의 공기가 숨막히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 제자들이 모여있는 이 공간의 분위기, 느낌, 온도, 공기를 상상해봅시다. 무언가 다른 느낌과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어쩌면 요한복음 20장의 공간과 사도행전 2장의 공간은 같은 공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1절 한 절 밖에 안되지만 제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고, 기대하고 있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마음이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무엇이 이 같은 공간의 공기를 다르게 변화시켰을까요? 불과 50여일만에 이들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절망과 두려움으로 떨던 이들이 기대와 소망으로 바뀌어 있고, 적막한 무거운 공기가 짓누르던 그 공간이 하늘을 향해 열린 소망의 공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밖을 향해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이제 같은 공간에서 열린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고, 걸어 잠구었던 문을 열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40여일 간의 만남
예수님은 부활 후 40여일의 기간동안 여러차례 제자들을 찾아와 만나십니다. 문을 걸어잠그고 두려워 떨던 제자들을 찾아와 만나십니다. 이자리에 없던 도마를 위해 다시 도마 앞에 서시며 십자가의 상처를 통해 도마의 믿음을 붙잡아 주십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고향으로 향하던 제자들의 길동무가 되어 그들에게 말씀을 다시 가르쳐주시고 성찬을 통해 예수님임을 다시 알리십니다. 갈릴리에서 베드로에게 세번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으로 베드로의 깊은 실패와 절망,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십니다.
새로운 깨달음
제자들은 40여일 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그들의 닫힌 눈과 귀가 열리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이전에 아무리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 하심에도 불구하고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그것을 십자가를 통과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함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비밀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마치 예수믿고 천국가는 좁은 복음의 이해에서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크고 놀라운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깨달아 알았을 때처럼 제자들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단순히 자신들의 스승 예수님이 다시 살아온 사건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가운데 뚫고 들어와 새로운 일을 이루시는 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가진 예수님의 몸을 만지고 목도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힘과 무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내어줌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우리의 관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미 나는 다 알고 있다며 교만하거나 나는 말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며 자만하는 사람은 맑은물에 아무도 없겠지요? 전에 경계사고 여행사고를 설교에 담아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하시죠? 우리의 신앙이 힘을 얻고 바르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 앞에 머물고, 배워야 합니다. 말씀이 나를 비추고 조명할 때 우리는 날마다 새로움을 입고 변화를 경험합니다. 때로는 공부하고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구절이 마음을 움직이고 관점을 새롭게 보게하고 실재로 삶을 바꾸고 나의 삶의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말씀 앞에 머무는 삶을 통해 날마다 우리의 존재와 삶에 다가오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맑은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책을 읽거나 관련 유투브 영상을 시청하거나 나의 삶에 여전히 배우고 알아가려는 자세와 태도는 나의 존재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책을 추천하고 나누고 선물하고 함께 읽어가는 문화가 맑은물에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나누고 실천하는 모습들이 우리를 변화키시고 가꾸어가길 기대해봅니다.
새롭게 된 내면
바깥을 향해 문을 걸어잠근 제자들은 바깥뿐아니라 자신과 예수님을 향해서도 문을 걸어잠궜습니다. 다시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죄책감과 수치심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밥상을 차리시고, 직접 숯불에 고기를 구워주시던 예수님. 절망의 걸음을 터벅터벅 걷던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 제자들과의 만남은 정죄와 죄책의 만남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길을 걸으며 일상을 나누는 친밀한 치유였습니다. 제자들의 깊은 절망과 죄책 수치로부터 다시 예수님을 향해 걷고 사랑의 용기를 일으키는 만남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아픈 마음을 아십니다. 문을 걸어잠근 그 공간으로 예수님은 불쑥 찾아와 들어오십니다. 절망의 걸음에 함께 걸으시고, 고개들수 없는 죄책에 밥상과 사랑으로 찾아와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누구나 아픈 상처와 쓰라린 과거의 실수가 있습니다. 마음 한켠에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나만 아는 아픔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꺼내어 말하기 힘든 어려운 과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흠 많은 우리가 온전한 삼위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가길 원하십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빚어가십니다.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십자가의 상처를 보여주시고, 함께 길을 걷고 밥상을 차려 먹이시던 그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 예수님께 우리를 맡겨드립시다. 나를 열어 그분께 내어 드립시다. 하나님의 현존과 하나님의 일하심에 나를 맡겨드리는 기도인 침묵기도와 예수기도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일하시도록 하는 아주 좋은 기도의 방편입니다. 함께 침묵기도를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교회 모임에서 나눔을 우리는 충분히 깊이 하고 있을까요? 조금 더 서로의 삶을 더 오픈하고 더 가까워질 필요는 없을까요?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 자리에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이 모인 가정교회에서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나를 열어서 서로에게 보이도록 합시다. 서로의 나눔을 있는 그대로 듣고 곁을 함께 하는 공동체와 나눔과 이야기를 통해 주님은 일하시고 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죄책에서 더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들
40일간의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꿈을 잃은 제자들을 다시 꿈꾸게 했습니다. 엠마오로 돌아가던 제자들은 다시 예수살렘으로 돌아왔고, 다시는 제자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베드로는 다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예수님의 길을 걷고 싶은 열망이 일어났습니다. 실패와 절망의 제자들을 다시 불러 세워 내가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시며 성령을 불어 넣으셨던 예수님으로 인해 제자들은 다시 하나님나라의 꿈과 비전으로 복음올 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맑은물 사람들 중에 한때 하나님나라를 향한 비전이나 교회를 향한 꿈으로 마음이 안뜨거웠던 사람은 없겠지요. 다들 한때 꿈으로 소망으로 가득했던 시절 한번 즘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나요? 그꿈이 지금도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고 있나요? 지금도 나의 만족과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나라의 일로 마음이 움직이고 설레이고 있나요? 과거의 일로 한 때의 일로 여기고 있지는 않나요?
목요일에 책을 빌릴 일이 있어서 부산도서관에 갔었습니다. 어릴적 벌써 40년이 훌쩍 지난 동네를 가니 바뀐 모습과 여전한 모습이 교차했습니다. 간김에 최근 다시 사상으로 이사와서 살고 있는 교회 형님께 연락하고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놀라운 것은 60을 바라보는 형님은 여전히 꿈을 꾸고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낙후된 덕포동이라는 동네에 일부러 들어와서 올리브 나무를 키우고 올리브정원이라는 것을 통해 지역에 스며들고 마을을 변화시켜가려는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형님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여서 저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소망이 생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과거에 한 때의 열정과 열심이 다가 아님을 형님의 삶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전통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이 새롭고 마을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형님을 통해 도전이 되었습니다.
만나면 마음이 새로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면 소망이 생기고 꿈이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사람이 맑은물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곳이 맑은물 공동체였으면 좋겠습니다.
맑은물 공동체가 꾸어야 할 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늘 우리 시대에 맑은물은 어떤 교회로 드러나고 나타나야 할까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온전히 나타나는 꿈을 함께 꾸는 맑은물이길 바랍니다.
교회가 화해와 용서의 공동체이기 보다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고, 점점 극우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교회의 모습속에서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고 평화를 가꾸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습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담아내는 공동체로 드러나고 나타나길 바랍니다.
이 일은 목사 한 사람의 비전과 역량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이 꿈은 가정교회 리더들의 헌신과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거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몸의 마디의 치체가 모두 머리되신 예수님께 연결되고 예수님으로부터 꿈과 사랑과 에너지가 공급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 일하시는 성령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굳게 닫히 제자들의 공동체를 뚫고 들어와 말씀하십니다. 먼저 평화를 샬롬을 제자들에게 전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에 보냄받은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보냄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예수님의 몸으로 삼위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존재로 세상에 존재합니다. 가족에게 그리고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에 그리고 이웃과 세상에 하나님을 전시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으로 제자들을 보내시는 예수님은 그들을 홀로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 여기 숨을 불어넣는다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딱 세번 나타납니다. 한번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 입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장면에서 나타나고 다른 한번은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에서 나타납니다. 창세기 2:7 —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루아흐/프뉴마)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에스겔 37:9 — 마른 뼈 환상에서 하나님이 사방에서 부는 바람(루아흐)을 향해 "이 죽임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어쩌면 요한은 의도적으로 이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 인류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시던 그 순간, 그리고 마른뼈의 환상에서 죽은 것 같은 이들이 큰 군대로 일어나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자들은 두려움과 절망과 막막함과 무가치함과 죄책감과 수치로 죽은 것 같은 생명없는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성령의 불어넣으심으로 인해 다시 살아납니다. 근원적으로 새로워짐을 경험합니다. 마치 고린도서에 나오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숨을 불어 넣는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나누는 행위와 같습니다. 이 숨속에는 십자가를 통과한 부활의 생명이 담겨있습니다. 제자들 안에 이제 성령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40일간의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 그리고 제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
같은 공간에 모여 있는 제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전에는 스스로 밖을 향해 문을 걸어 잠그고 안으로안으로 움추러들었던 제자들이 하늘을 향해 기도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로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제자들은 닫힌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하늘을 향해 모든 것을 열어두고 성령의 나타나심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사람들이지만 다른 공간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과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바뀐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났던 이 변화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 성령께 나를 맡기고 나를 내어드리는 사람들… 그들 안에서 하나님은 일하시고 공간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공동체와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켜갑니다.
부활절을 지나 성령강림절을 맞았습니다. 우리 맑은물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를 이끄시고 변화시켜가심에 내어맡기며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맑은물 공동체를 그리고 가정교회를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나아가는 맑은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으로 움추러들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공동체와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눈을 들고 세상을 향해 팔을 멀리는 맑은물 공동체와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