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말씀-씨앗-좋은 땅

본문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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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무더위가 몸과 맘을 지치게 합니다.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길 바랍니다. 



말씀을 나누기 전에 함께 이야기 해봅시다. 


1. 말씀을 읽거나, 공부하거나, 묵상하거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심기워지고 실제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온 기억이나 내용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혹시 없다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과 이유를 나누어봅시다.


2. 최근에 말씀을 어떻게 읽고 묵상하고 있는지 나누어봅시다. 내 삶에서 말씀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무게는 어느정도 일까요?


3.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 걸림돌이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말, 말, 말

우리는 말의 홍수시대에 살아갑니다. 엄청난 정보와 메시지가 넘쳐나지만 정작 그 안에서 나의 존재와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말이 가공되고 담긴 것이 책이요, 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투브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어쩌면 말(메시지)을 옮기는 하나의 방식일 것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쇼츠, 릴스, 틱톡을 손가락으로 쓸어넘기며 소비하지만 마음에 남거나 기억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보와 메시지는 넘쳐나지만 우리의 영혼이나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변화시키는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말은 넘쳐나고 수많은 말을 소비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은 더 가난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건 아닐까요?

하지만 말은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위로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꾸고 삶을 전환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 한마디가 마음에 상처로 남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계속해서 주저앉게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달아 놓은 악플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말의 홍수 속에 살아가 말의 가치가 떨어진 시대에 살지만, 그렇다고 말이 가지는 힘과 의미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말은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말에는 세상을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말에 생명이 있고, 말에 구원이 있고,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신실하다.

어쩌면 이번 주 성서일과의 말씀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의 홍수 시대에 살지만 삶의 변화가 없는 기독교, 사람은 안변해하며 말씀도 성령도 두손두발 다 들었다고 말하는 냉담한 사람들, 오랜시간 말씀을 나누고 가르치고 수고하고 애썼지만 변화없는 교회와 사람들을 보며 낙담한 마음들에게 여전히 말씀이 힘이 있다고, 여전히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영혼을 소성케하고, 존재와 삶을 변화시키고 일하고 계신다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린 비가 땅을 적셔 싹을 틔우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반드시 열매를 맺고야 만다고 말씀합니다. 씨는 신실합니다. 말씀은 신실합니다. 
그리고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도랑을 파고 물을 대고 땅을 경작해서 열매를 맺는 농부로 묘사됩니다. 하나님도 신실하십니다.

무언가 제자리 걸음 하는 것 같고,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것 같은 상황인 것 같은 상황에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분의 말씀도 신실하다는 선언과 약속은 위로와 도전이 됩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안에 생명을 창조하고 변화를 일으키시고 열매를 맺으시겠다는 신실한 약속은 다시금 힘과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도 어려웠던 일.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말씀은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4가지 밭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배경을 알면 이 비유가 조금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11장 12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사역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반복되고 지속되는 거절과 의심의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이 의심하고(11:2-3), 고라신과 벳새다가 회개하지 않고(11:20-24), 바리새파는 예수님의 사역을 바알세불의 짓이라 모독하며(12:24), 심지어 가족들조차 예수님을 오해합니다(12:46-50). 예수님도 참 힘드셨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선포되고 말씀 자체인 예수님이 계심에도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선포되고, 하나님나라가 도래했는데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말씀이 뿌려졌지만 열매맺지 못합니다. 낙담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도 어려웠던 일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몇번의 친절과 환대로 사람이 바뀐다면 이미 이 세상은 천국이겠지요. 몇번의 성경공부와 말씀 나눔과 대화로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변화가 찾아온다면 누구나 리더를 하고 서로서로 성경을 공부하겠지요. 
예수님도 그렇게 어렵고 힘드셨는데 교회로 사는 것, 리더로 사람을 섬기는 것, 공동체에서 서로에게 헌신하고 환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는 화도 나고, 낙담이 되기도 하고, 이럴려고 내가… 하면서 자괴감이 오는 순간도 있습니다.

마태는 사람들의 회의, 거절, 반대와 저항의 문맥속에 예수님의 씨뿌리는 이의 비유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1절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라는 단어와 3절에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고 하는 나갔다는 단어가 같은 단어입니다. 마태는 이 나갔다라는 동사를 통해 우리에게 귀뜸을 해줍니다. 여기 씨뿌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암시합니다. 
거절과 무관심과 거부와 반대 속에서도 씨 뿌리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나라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지치고 낙담되고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있었겠지요. 그래도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 하나님나라의 일을 계속하시고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셨습니다. 씨 뿌리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알고보면 우리의 삶의 현장이 어렵고 힘든 것이지 복음이 문제가 있거나, 하나님나라의 삶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지 말씀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성취될 미래입니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하나님나라를 살기에 부대낌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나라가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나라의 신실함과 예수님의 신실함을 신뢰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냅시다. 그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말씀하시는, 농부가 씨뿌리러 나가는… 그림을 상상하며 오늘 우리가 나가서 살아야 하는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맑은물이길 바랍니다. 

4가지 밭.

4가지 밭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많이 읽고 들어서 익히 잘 압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심플합니다. 길가, 돌짝 밭, 가시덤불, 좋은 땅 이 네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이 3가지는 실패하고 한가지는 성공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오해를 합니다. “나의 마음 밭은 어떤 유형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것을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마치 MBTI나 에니어그램, 혈액형 처럼 어떤 고정된 형태의 유형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네 종류의 땅은 네 종류의 사람이라기보다는(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 안에 나타나는 네가지 지형에 가깝습니다. 내 마음 안에 길가도 있고, 돌짝 밭도 있고, 가시덤불도 있고, 좋은 땅도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는 말씀을 거부하기도, 어떤 영역에서는 뿌리까지 내렸지만 여러가지 염려로 자라지 못하고, 어떤 영역에서는 열매를 맺는 지점도 있습니다.

한가지만 있냐? 네가지 다 있냐?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운명이 아니라,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격유형은 거의 변하지 않지만 땅은 바뀝니다. 경작하고 가꾸고 갈아엎으면 바뀝니다. 길은 갈아 엎으면 되고, 돌은 골라내면 되고, 가시덤불은 뽑으면 됩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오류는 내가 좋은 땅이 되어야지 하며 성경읽고 기도해야지라는 결심으로 쉽게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우리는 반복해왔습니다. 또 하나의 돌짝밭의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곧 뜨거워졌다가 곧 식어버립니다.

성서일과의 시편의 말씀은 밭이랑에 물을 대고, 흙덩이를 주무르고, 움트는 새싹에 복을 내리는 분을 누구라고 이야기하고 있나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땅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땅을 일구시는 하나님께 나를 맡겨드리는 일입니다. 물 속에서 뜨려면 몸에서 힘을 빼야 합니다. 그리고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훈련을 반복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하는 힘을 빼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고 이끄시도록 내어맡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이야기를 로마서의 말씀에서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곧 내 의지와 결심으로는 할 수 없던 그 일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죽은 몸을 살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굳어진 마음, 엉겅퀴난 마음, 자갈이 무성한 마음 하나 갈아엎지 못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고 마음을 쓰는 이의 마음에도 일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 밭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쟁기가 아닐까요?

그러니 좋은 땅이 되겠다는 더 강한 결심과 노오려억이 아니라 더 정직하고 진실된 기도와 내어맡김에서 시작됩니다. ‘주님, 제 마음이 이렇습니다. 마음이 굳었습니다. 여기는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얕습니다. 여기에는 가시도 자랐습니다. 주님 제 마음을 갈아엎어주세요. 새롭게 해주세요. 주님께서 제 마음을 경작해주세요.’ 나의 마음의 땅을 하나님께 열고 맡기는 것, 그것이 경작의 시작입니다. 

좋은 땅의 기적

네가지 밭의 공통점은 씨앗이 뿌리워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들었느냐 안들었느냐의 차이가 아니라 들은 말씀에 대한 반응의 차이입니다. 말씀을 듣고 간직하고 뿌리내리고 깨닫고 살아내는 차이가 전혀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때론 반응도 합니다. 때론 무언가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들은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지고 간직하고 살아내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길가는 굳어진 땅입니다. 수많은 정보와 말의 홍수 속에서 말씀도 그져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컨텐츠에 지나지 않습니다. 잠간의 유투브 영상을 소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돌짝밭의 핵심 단어는 ‘곧’입니다. 곧 싹이 나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고 조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걸려 넘어집니다. 자기 안에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생명력이 없습니다. 때론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내 삶의 고백이 되지 못했기에 곧 흔들리로 사라지고 맙니다.

가시덤불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고 합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염려는 여러 갈래로 나뉘는 상태를 말합니다. 염려와 걱정에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합니다.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갈팡질팡합니다. 유혹은 기만입니다. 돈과 자본의 거짓에 속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죄는 아니지만 마음의 중심을 잃게 만들고 말씀이 자라고 성장하고 열매맺을 공간과 에너지를 앗아갑니다. 교회와 신앙이 여러가지 관심사 중 하나로 전락합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입니다. 깨닫다는 단어의 의미는 ‘함께’와 ‘두다’라는 단어를 결합한 것입니다. 들은 말씀과 나의 존재와 삶을 함께 두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 나의 계획, 나의 상처, 나의 관계, 나의 시간, 나의 꿈과 통장 잔고를 말씀과 함께 두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지만… 
주일에 잠간 본문을 읽고 설교를 듣고, 느낀 감상을 나누는 것도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데에는 힘이 없습니다. 설교자의 문제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고민하고 씨름하고 살아낸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스쳐지나가는 느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묵상하고 살아낸 깨달음을 나누고 이야기 할때 그 말씀은 생명력을 가지고 내 안에서 일을 하고 변화를 일으키고 열매를 맺어갈 것입니다.

맑은물의 미래, 가정교회의 미래는 바로 여기에서 좌우될 것입니다. 열매맺고 성장하는 맑은물과 가정교회는 말씀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고, 깨닫는 것, 깨달은 말씀으로 씨름하고 살아낸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단순히 삶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서 말씀과 함께 둔 삶을 나누는 것이 가정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숫자로보면 3:1로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말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변화를 일으키고 열매를 맺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당시 사회의 열매는 10배가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30배, 60배, 100배는 상상을 벗어난 열매입니다. 3:1를 넘어서고도 남는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은 여전히 힘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맺는 열매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변화된 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신실한 말씀, 신실한 하나님께서 말씀에 반응하고 깨달아 열매맺는 이들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약속대로,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자라 것이며,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어 돌아올 것입니다. 

말,말,말…

말의 홍수 속에 살면서 말이 아무런 힘도 생명력도 없는 듯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힘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며 신실합니다. 
다시 나를, 우리 가정교회를, 맑은물을 이 말씀 앞에 세웁시다. 
말씀이 내 안에 심겨져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열매 맺도록 이 말씀 앞에 섭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생각하고 질문합시다. 그리고 말씀을 나의 존재와 삶에 함께 둡시다. 말씀이 나에게, 나의 삶에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귀 기울입시다. 
나의 마음 밭, 우리 가정교회의 마음 밭, 맑은물의 마음 밭이 좋은 땅이 되도록 하나님께 내어 드립시다. 하나님께서 기경하시고 가꾸시도록 내어드립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새일을 시작하시고 말씀으로 열매맺어 가시도록 맡겨드립시다. 
저와 우리 모두의 존재와 삶을 통해 열매맺어가실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며 살아갑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씨 뿌리는 자로 오신 주님, 거절과 무관심 속에서도 뿌리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수십 년 들어온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우리의 마음 밭을 살피게 해주세요.

밟혀 굳어진 곳을 갈아엎어주세요, 
얕은 감동에 머물지 않고 깊이 뿌리 내려 머물게 해주세요.
염려와 재물의 기만이 조여오는 가시를 뽑아주세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님! 우리 마음 밭의 농부가 되어 주소서. 
우리 나와 가정교회와 맑은물 교회가 말씀의 단비를 나르는 맑은 물길이 되게 하시고, 때가 이르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로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